(967)노동운동의 자주성|이병태<한양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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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종래에 보면 노총대의원 대회는 으례 주먹이 오가는 폭력이 난무하고 추문까지 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대회가 대과 없이 끝난 것은 우리 나라의 노동운동이 그만큼 본궤도에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 것 같다. 이번 대회에서 노총위원장 후보 세 사람 모두가 노조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들고 나왔던 것은 퍽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후진국의 노동운동은 근로자들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다른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 공통된 점이다.
한국의 경우도 1920년대 한일민족운동으로 비롯된 노동운동이 전평운동(45년)에 대항, 반공투쟁의 일익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50년대에는 정치도구로 이용당해 타락했었다. 그후 60년대에 접어들어 노동운동의 자주화·민주화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되어 차츰 노조는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62년부터 기업별 노조가 산별노조로 노동운동 양식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여기서 가장 문제되는 점은 노사분규로 인한 혼란의 방지. 따라서 노동운동의 방향은 우선 근로자측에서 보면 노조의 조직확대라는 양적 문제, 후진성을 탈피하여 자주성·민주성을 바탕으로 한 노동운동의 질적 변화, 노조원의 의식확대, 근로자의 복지향상으로 요약된다.
사용자측에서도 노동운동의 탄압으로만 이익을 보려던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을 떠나 노동자의 극렬한 투쟁을 피하는 길은 대화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노조가 없는 기업이 있는 기업보다 대화가 잘되어 가는 예도 많다. 복지국가의 이념은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뤄질 수 없는 논리는 전체 임금생활자의 7분의1밖에 안 되는 경영진의 월급이 전 인건비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현실 속에 50만 노조원을 이끌어 나갈 노총은 민주성·자주성의 터전 위에 근로자 백서를 꾸며 당면과제부터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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