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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어제는 이곳 길상국민학교의 추계 대 운동회가 열렸었다.
해마다 이맘때쯤에 오곡이 무르익어 풍요를 이루는 가을 중순에는 전국 방방곡곡서 국민학교 어린이들을 위해 열려지는 운동회로 동심들은 한껏 부풀어오른다. 운동회를 하루쯤 앞둔 전날 밤에는 몇 번씩 나와 하늘의 천기 보느라 선잠 깨던 때가 많다.
오랜만에 신어 보는 새 운동화, 평소에는 과자 한 개, 사과 한 개도 흔하게 못 사주시던 엄마가 이 날 만은 「캐러멜」, 「초컬릿」까지 사 주시며 일등을 하라고 몇 번씩 힘을 주신다. 그리고 기다려지는 점심 시간에 순이네랑 철이네랑 수영네랑 삥 둘러앉아 제각기 차려온 엄마 솜씨 누나 솜씨의 음식을 나누어 먹는 맛이란 정말 기쁘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해마다는 커녕 2년에 한번도 운동회를 열지 못하는 학교가 늘어간다는 서글픈 소식이다.
도회지 학교는 좁은 운동장이 문제이고 시골학교는 경비 염출이 문제란다.
올해만 해도 서울에 2백 학교가 넘지만 그중 운동회를 하는 학교는 불과 42개 학교뿐이고 시골학교는 더 많은 비율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라져 가는 어린이운동회는 꼬마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큰 상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위치한 이 곳 학교에서는 2년마다 나마 줄곧 전통을 이어 올해도 형편대로 열렸다.
더욱이 이번 운동회에 있어서 나로서는 전에 가져보지 못한 큰 보람을 느꼈다. 그것은 약20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뛰던 그 운동장에서 이제는 나의 어린것이 뛰는 것을 보는 학부형이 된 것이다.
우리 꼬마 녀석 순아가 청군이라서 인지 우리 식구들도 모두 청군인양 청군이 이기면 환호와 박수의 갈채를 아낌없이 보내고 백군편이 이긴 때면 공연히 안타까워서 안절부절 했다.
저 티없이 밝은 어린이들의 앞날을 위해서도 보다 힘차고 보다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운동회만은 사라져서는 안될 말이다. <최옥희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내촌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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