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 고지를 향한 정치 계산 닉슨 방 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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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닉슨」미대통령의 중공방문결정이 밝혀지자 소련의 처지는 마치「닉슨」-모(미-중공)의 한 쌍이 춤추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는 초라하고 측은한 여인으로 묘사되곤 했다.「닉슨」대통령은 그의「파트너」를 바꿔 내년 5월 하순께 가서 소련도 상대해 주기로 약속한 셈이다. 물론「닉슨」에게는 그 나름으로 변심의 의혹과 질투에 가득 차 있는 소련을 도외시할 수 없는 정치적 계산과 필요성이 있었다. 소련의 삼 두 지도층과「닉슨」의 정상회담은 극도로 악화돼 있는 소-중공 관계 속에서 미-소-중공 삼각관계의 유리한 전개와 72년의 대통령선거를 앞둔 국내정치의 두 가지 면에서 그 필요성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닉슨」의 중공방문 결정이 한국·일본·자유중국·남북월남·북괴 등에 몰고 온 충격은 컸지만 내심 가장 놀란 것은 소련이었으리라는 데는 이론이 없었다. 물론 소련은 상투적인『공모·결탁 논』을 쳐들어 미-중공의 접근을 공공연히 비난하진 않았다.
그러나 소련은 『은인자중』하면서도 초조감과 우려의 빛을 감추지는 못했다. 소련은 중공이나 미국이 소련의 고립을 목표로「닉슨」-주 회담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면 미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대통령과 국무장관의 입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공언해 왔다.
「닉슨」대통령의 방 소 목적은『양국관계의 개선과 세계평화의 증진』에 있지만 무엇보다도 소련의 의혹과 우려를 씻어주는 기회가 될 것이며 또 중공방문 후인만큼 미-중공회담내용을 통보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초강대국의 신입생인 중공보다도 소련의 협조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다시 말하면 주요현안문제의 해결에 있어 소련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만큼 미국도 소련의 협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최근의 미-소 협조결과「베를린」4대국협정, 생물학무기 폐기협정, 핵전쟁 우발방지합의, 인공위성을 통한 미-소 직접통신개선, 해상우발사고방지협상이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 국력의 해외전개를 축소하고 국내문제의 해결에 보다 많은 자원을 전환시켜야 할 필요에서 소련 못지 않게 전략무기제한회담, 구주안보회의,「나토」·「바르샤바」동맹의 상호균형병력감축, 월남전의 결말, 중동문제 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다.
비협조적이며 반감에 싸 인 소련이 이들 문제의 성공적 해결에 장애가 되리라는 것은 예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소련과 중공이 이념·영토권 분쟁으로 화해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미국이 양다리 걸치는 미-소-중공 삼각관계는 미국이 양자간의 분쟁을 악용하려 들지 않아도 이로울 것은 뻔하다.「닉슨」의 소련방문은 아직도 7개월 후의 일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점이 하급의 협상에서 소련을 충분히『순치』하여「닉슨」대통령의 말대로 미-소 정상회담이 의식방문이 아닌 결실 있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의 일부 논객들은「닉슨」행정부가 소-중공 분쟁을 교묘히 이용하여 실리를 거두려 하지 않는데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현 상황에서「닉슨」의 양다리 걸치기는 자연 이러한 실리를 거둘 것이 예상된다.
「닉슨」의 중공방문 시일은「키신저」의 제2차 중공방문으로 확정되겠지만 소련방문이 내년 5월 하반기로 확정된 것은「닉슨」대통령에게 국내정치면에서 크게 이롭게 작용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정객』「닉슨」이 이런 정치적 계산을 하지 않았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내년 5월말이면 대통령선거를 불과 5개월 앞둔 때이다.「닉슨」의 중공방문과 8·15경제조치에 이어 제3탄인 소련방문이 예기치 않은 사태로(1960년의「아이젠하워」방문예정 때같이) 취소되거나 실패하지 않는 한 그의 재선운동에 도움이 될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설혹 취소되거나 실패한다 해도 미 국민의 여론은 오히려 대통령에 대한 동정으로 전환하기 십상이다.
대통령의 해외외교행각은 그것이 거의 예외 없이 대통령의 인기를 상승시키며 이것이 흔히 표와 연결되는 것도 사실이다.
8·15 경제조치와 뒤이은 제2단계조치로 내년 11월 전까지 경기가 회복되고 실업자수가 줄고 물가가 안정되고 국제수지역조가 호전한다면 다음선거에서 최대「이슈」가 될 것이 예상되는 경제문제에서 국민 앞에 내놓을 업적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에 더하여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은 있었지만 일단「티 우」대통령의 재선으로 월남정국이 당장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게 될 전망이고 약 5만 명 정도의 병참·경호·공군력만 남겨두고 주 월 미군을 계속 철수시키면 68년의 당선 때 『나에게는 월남전을 종식시킬 복안이 있다』는 공약을 거의 이행했다고 국민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중공과 소련방문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면『대결의 시대에서 협상의 시대』로 옮겨가자는 구호아래『한 세대의 평화』를 이룩하는 제1보를 내디뎠다고 유권자들에게 주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의 대 중공 접근, 대소협조촉진이 원대한「비전」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정략의 일환에서 나온 것인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지만 미-소-중공 삼각관계의 유리한 전개와 그의 재선에 도움이 될 것은 틀림없다. <김지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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