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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PEN대회에 다녀와서|윤병노<문학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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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년은 국제PEN이 창립 된지 50주년이 되는 획기적인 대회가「에이레」의 「더블린」에서 열렸다. 이곳에서 가장 먼 서반구의 한 끝머리지만 10여명의 우리 대표들은 9월12일 개회날짜까지 전원 「더블린」의 회의장까지 안착했다. 제각기「그룹」이 되거나 개인으로 출발을 달리하고 항로가 엇갈렸지만 어김없이 제시간에 닿은 것이다. 40여국의「펜·센터」에서 4백여명의 작가들이 회의본부인 「마린·호텔」로 모여들었다. 이곳의 유명한 피서지요 항구이기도 한「던로헬」에서 가장 큰 「호텔」에서 막을 올렸다.
제각기 피부색을 달리하는 동서남북의 인종들이 있지만 서로들 웃음으로 인사를 잊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에 우리가 「펜」대회를 서울에서 주최했기 때문에「코리아」에 대한 인식은 대단한 느낌이었다.
첫날은 대표들의 등록절차를 끝내고 저녁에는「에이레」시 낭독 회가 열렸다.
모두들 원로에 지친 탓인지 그리 많은 인원이 모여들지는 않았다. 다음날 13일부터는 집행위원회가 열렸다. 정 대표들만이 참석하는 이 모임에선 1년 동안에 벌어졌던 여러 가지 일들이 보고되었다.
이를테면 「체코」에서의 작가탄압문제라든가, 내년도에 「필리핀」에서 국제「펜」 대회를 연다는 것과 「펜」 운영기금을 위해서 「펜」 회원은 누구나 회비를 내야만 자격을 인정한다든가 하는 잡다한 문제들이었다. 특히 집행위원회의 둘째 날엔 신랄한 논란 끝에 국제 「펜」회장이 개선되었다. 「에마누엘」회장대신에 새로이 서독「펜·센터」회장인「하인리히·뵐」씨가 신임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소설가이며 극작가이기도한 그는 동독「펜·센터」의 지지까지 받아 무난히 당선되었다. 「에마누엘」씨가 유임되지 못한 것은 그의 재임기간에 뚜렷한 공적이 없었다는 점과 영국과 「프랑스」 「센터」와의 불협화에서 얻어진 것이었다고 풀이되었다.
13일 저녁엔 정부초청「리셉션」이 「더블린」 「캐스틀」에서 벌어졌다.
많은 대표들은 정장을 하고 부인을 대동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딸과 함께 나타난 것도 이채로 왔다. 서구사람들에겐 우리와는 달리 홀아비로 참석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런 것인지 모른다.
그런 대로 우리 여류작가들의 화려한 한복차림은 이 「리셉션」 의 화사한 꽃이 되기도 했다.
특히 「어너·게스트」로 초청된 모윤숙 여사를 비롯해서 손소희 조경희 이영희 여사 등은 「파티」때마다 옷차림에 정성을 쏟은 듯 했다.
많은 외국작가들은 지난해의 서울대회를 잊지 못했다. 너무도 지극한 환대와 좋은 인상을 받았노라고 답례했다. 화난의 어떤 작가는 나의 손목을 붙잡고 작년에 서울에 못간 것을 몹시 유감 되게 생각한다고 되뇌었다.
실상 이번 「더블린」 대회는「에이레」의 어려운 국내사정과 재정난으로 푼푼한 「파티」를 베풀지 못한 것 같다. 더우기 북「에이레」「센터」와 「아이리쉬·센터」와의 협조가 원만히 이루어지지 못한 느낌이었다. 회의 준비나 진행이 우리 서울대회에 비한다면 철저하지 못했다. 그러나 「에이레」의 긴장된 경제나 재력으로 봐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14일 개회식에는 「에이레」수상이 임석 해서 축사가 있었다. 몹시 정중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즉석 연설을 끝내고 퇴장할 때 모든 대표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그 다음 「에마누엘」 회장의 자못 심각한 연설이 이어지고 개회식은 끝났다.
15일부터는 본격적인 주제토의가 진행되었다. <문학의 변모> 주제 밑에 먼저<문학과 그 후원>이란 토론이 벌어졌다. 「크란스톤」의 사회로 미국의 젊은 작가 「토머스·플레밍」의 연설은 자못 신중하고 대담한 얘기를 담고 있었다.
이 뒤를 이어 7,8명의 대표들이 토론에 참석했다. 16일에는 <문학과 저항>이 「헝가리」의 「이반·볼지잘」의 사회로, 그리고 17일에는 <문학의 새로운 형태>가 「부리안·마크마혼」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제각기 주조연설이 있었고 진지한 토의가 있었는데「업저버」로 참가한 소련대표 「니콜라이·헤드렌코」의 연설은 상당한 주목을 끌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대표의 임무는 주로 지난 서울대회에 대한 인사와 「아시아」 문학 번역국 활동에 대한 보고와 그 협조에 대한 호소였다고 할 것이다. 13일에 정인섭씨 사회로 열린 「아시아」 작가들의 모임에서 번역국 사업보고와 앞으로 발간될 「쿼털리」에 대한 협조를 호소했다. 여기에 참석했던 「터키」 인도 일본 「타일랜드」 「필리핀」 「레바논」「이스라엘」 「하와이」 대표들은 여기에 적극 찬성을 표해주었다.
18일 폐회식은 「에이레」「펜·센터」회장의 애조어린 폐회사가 인상적이라 하겠다. 다시 우리들은 만날 수 있겠기 때문에 이별이란 인사를 남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비교적 조촐하면서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더블린」대회는 이렇다할 큰 화제를 남기지는 않은 것같다. 우리 대표들은 멀리「벨파스트」에서까지 달려온 교포들과 아쉬운 석별을 나누면서 「에이레」 따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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