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김난도·장하준 … 곳곳서 한국 이끌며 조정자 역할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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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호 04면

원희룡 전 의원은 1981년에 치러진 82학년도 대입학력고사에서 전국수석을 했다. 이듬해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한 뒤 학생·노동운동을 하다 92년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해 언론의 주목을 또다시 받았다. ‘82학번’의 대표 격이었던 셈이다.

‘×파리’로 불리던 82학번 세대의 현주소

현재 한국 사회에선 그 외에도 ‘×파리들’(82라는 발음 때문에 나온 말로 82학번들을 가리킴)이 사회 곳곳을 이끌어가는 ‘허리’이자 실질적인 조정 역할을 하는 중추가 됐다는 평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금융위원회의 ‘넘버2’로 임명된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 한국은행 최초의 여성 임원에 오른 서영경 한은 부총재보 등이 82학번이다. 나경원 전 의원, 이혜훈 최고위원, 원유철ㆍ강기정ㆍ조정식ㆍ조해진·강석훈 의원 등 82학번들의 부상은 정치권에선 일찌감치 시작됐다. 김난도·조국 서울대 교수, 왕상한 서강대 교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한때 ‘주사파의 대부’로 불렸던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등도 있다. 이들 외에도 행정고시를 거친 관료 그룹과 각 기업의 경영진에 같은 학번이 포진해 있다.

이에 대해 원 전 의원은 “82학번은 학생 숫자 자체가 많은 데다 주사파에서 정부 관료까지 워낙 다양한 분야로 흩어져 더 눈에 띄는 것 같다”며 “이제 50대에 진입하고 있어 어떤 조직에서든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82학번은 베이비붐의 마지막 세대인 데다 1980년 입시제도가 바뀌어 대입 정원이 크게 늘어난 혜택을 본 세대이기도 하다.

그는 또 “80년대 초 대학에 들어가 격동하는 현대사의 한복판에 있었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이어서 학생운동을 하는 이가 많았고,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도 부채의식이 있었다. 서로 공유하는 정서가 넓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졸업 후 사회 여러 분야에서 새바람을 일으켰다. 특히 정치권에 들어온 82학번 출신들은 다른 386세대들과 함께 ‘수요모임’(17대 국회), ‘민본21’‘삼수회’(각각 18대 국회) 등을 만들어 정치 개혁에 앞장서 왔다.

이제 50대를 바라보는 지금, 82학번에 또 다른 역할을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원 전 의원은 “소위 운동권 486은 성숙하고 책임감을 가진 진보로 진화해야 하고, 보수 계열의 길을 걸어 온 82학번들은 복지와 정치개혁에 힘써 기존 기득권층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그런 책임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82학번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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