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 위협으로써 수습될 일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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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4일부터 재연되기 시작한 이른바 「수련의사파동」은 7일에 발표된 정부의 강경방침 표명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전 국립대학병원 「인턴」「레지던트」들의 집단사표 제출로까지 확대되어 전 국립대학병원의 기능을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뜨렸는데 8일부터서는 연세대병원·국립 「메디컬·센터」에 근무하는 수련의사들까지도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게 됨으로써 이 문제는 마침내 건국 후 최대의 인술파동으로 번질 징후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지난 2∼3년 내 간헐적으로 되풀이돼온 수련의사들의 파동이 최근에 이르러 이처럼 파국적인 상태로까지 악화된 원인은 한마디로 정부당국자의 안이한 사고방식의 소산으로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사태를 고식적인 방법으로 호도 하는 것을 능사로 삼아온 타성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지된바와 같이 수련의들의 요구라는 것은 ①직급개정을 통한 처우개선과 둔 무직수당지급 ②일관성 있는 보건정책의 수립 ③수련의사들에 대한 차별적 해외여행 제한조치의 철폐 등 정부당국자 조차도 그 합리성을 인정한 너무도 당연한 요구사항들이요, 또 보기에 따라서는 현재의 우리 나라 행정력을 가지고서도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들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들의 주장과 같이 「인턴」「레지던트」들은 비록 대학원과정에 재적하고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의과대학의 6년 과정을 마친 뒤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여 한사람의 당당한 의사들인 것이며, 이들이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을 거치는 5년간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과중한 근무조건을 감당하면서 인명을 다루는 직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할진대, 이들에게 최소한 생활급은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인도상으로도 당연한 요구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국은 번번이 이들의 처우개선요구에 대한 선처약속을 뒤엎고, 최하3만3천원(인턴) 최고 4만9천2백70원(레지던트 4년급)이라는 보수기준책정마저 거행해 온 것이다. 문교당국이 최근에 제시한 처우 개선안에 의하면 그 보수기준은 최하 2만3천70원, 최고3만6백80원으로 돼있다고 하는데 그 차액은 1인당 불과1만1백70원 내지 1만8천5백90원으로서 오늘의 우리재정에서 이 정도의 재정부담증가를 염출해 여지가 없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이 문제에 관련하여 문교당국이 미리 언약한 처우 개선안이 예산당국에 의해 번번이 백지화되고 있는 사태는 정부자체의 위신과도 관계되는 것으로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지에서 본다면, 수련의사들의 신분상 규정을 어떻게 해야 하겠다느니, 타 직종 공무원과의 균형이 문제라느니 하는 주장들은 한낱 기엽적인 변명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 파동과 관련하여 정부가 이들을 전원 군에 징집 운운하여 일종의 위협적인 태도로 나은 것은, 이미 불붙은 분규에 기름을 퍼붓는 처사로서 그것이 전문직업인들을 다루는 온당한 방법이 아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국민으로서는 사전에 아무런 통고도 없이 병원을 집단 이탈한 수련의사들의 행동을 결코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대학교수·변호사·의사 할 것 없이 전문직업인에게는 일반 근로자와는 다른 무거운 사회적 책임이 부과돼있고, 띠라서 이들에게는 엄격한 직업윤리의 준수가 요청되는 것이다. 자신의 처우개선에 관한 요구가 제아무리 합리적이요, 타당성이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병석에 있는 환자를 내동댕이치고, 더군다나 아무 사전예고도 없이 병원을 떠난 행동에 대해서는 그들의 요구에 대한 정부의 처리여하와는 관계없이 심각한 반생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는 방금 중대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있는 인술파동이 결코 그 관계자에 대한 해임위협만으로써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직시하고, 다시 진지한 대화의 길을 모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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