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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의 체계적 해독 시도-"음운체계 없는 한자음 해독은 잘못"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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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려대 박병채 교수는 지난 10년간의 연구결과를 집약해서 최근 『고대 국어의 음운체계 재구성론』 (고려대 민족문학연구소간 「민족문화연구」제5호)을 발표했다. 그 시론은 특히 이제까지 정설로 돼온 향가해독에 이설을 제기할 토대가 될 것으로 보여 국어학계의 주목을 끌고있다.
1천여년전 우리말의 음운체계는 당시의 문자가 순수한 우리 글이 아니었고 또 믿을만한 언어자료가 부족한 때문에 그 구조를 알지 못하고 있다.
박 교수는 그러한 제약 속에서도 이를 면밀히 분석 검토해 체계를 세움으로써 중기국어와의 연결을 시도한 것이다. 중기국어 즉 15세기에 이룩된 훈민정음으로 인해 그때의 음운체계는 막혀져 있으며 그 이후 국어의 음운체계도 확립돼있는 편이다. 그러나 15세기이전의 국어는 체계구성상 곤란이 많으며 종래의 몇몇 학설이 구구할 따름이다. 고대에는 고유문자 없이 우리말을 한자로써 표기했다. 첫째는 정통적인 한문에 의한 문자생활이고 둘째는 한자를 이용해 우리 음을 표기하는 방법이었다.
「향찰」이니 「이두」니 하는 것은 모두 한자의 빌어 적은 것인데,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어떤 음을 빌어 적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때문에 고대의 음운체제를 밝히는 일은 중요한 과제이다. 박 교수가 그동안 시도한 방법은 ①가장 오래된 국어의 한자음에 반영된 전승자음의 내부구조를 분석하고 ②이를 수·당(한자음교정시대)의 중국원음과 비교해서 음운대치법을 구명하고 ③각각의 중국음운에 대한 국어음운의 반사조건을 토대로 이를 체계화하려한 것이다.
중국의 한자는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 음운의 특성에 따라서 음이 바뀌었다. 같은 한자라도 우리 국어의 한자음이 다르고 또 일본 및 안남의 것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또 중국의 한자음도 수천 년을 지나는 사이에 상당히 변한 까닭에 오히려 우리나라의 한자음에 그 고음이 간직돼있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
문화사적 배경으로 볼 때 수·당 시대 곧 우리나라 삼국시대인 6, 7세기 때는 한문이 동양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이 시대에 초당의 한자음이 일단 고정됐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때쯤 한자음이 어느 정도 고정되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므로 고대국어의 음운체계는 이 시대 한자의 내부구조와 중국원음의 우리말반영현장을 체계적으로 연구, 귀납적인 논증을 가지고 공통의 음운구조를 밝혀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대비에서 구성된 고대국어의 자음체계와 모음체계는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첫째 자음 체계는 11음 단선체계이며 오늘날 전하는 「끄」·「뜨」·「쁘」등 된소리도 없었다. 훈민정음의 자음체계에서와 같은 기음화·후두화에 의한 음운론적 대립도 없었다.
둘째 모음에 있어서는 8모음체계이다. 중기국어의 모음체계가 7모음체계인데 비해 더 많았다.
박 교수는 이같은 가설적 구성을 토대로 이제 향가의 해독을 착수할 계획이다. 음운체계 없이 한자음을 적당히 해석하던 폐를 근본적으로 벗고 보다 체계적 해독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달 말쯤 역저 『고대국어의 한자음연구』를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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