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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대형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70년도에도 많은 재난들이 있었다. 모산 건널목사건이나, 남영호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는 이제 재난도 매머드 화하고 대형화한다고 생각하였다. 현대사회에서는 무엇이나 대형화한다. 나룻배에 재난이 일어나면 5, 6명만 희생되지만 오늘의 선박에 조난사고가 일어나면 수십 명이 희생된다. 거대한 조직이나 기구를 맡는 인간이 감시의 눈을 소홀히 하고 의무를 게을리 하면 이러한 무서운 비극이 일어나고 만다.
우리는 71년의 역사 속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형태의 재난을 맞게 되는 것 같다. 지난 7월말에 사법파동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체제에 도사리고 있는 또 하나의 근본문제가 터져 나온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현실을 참을 수 없다고 박차고 일어나면서 절규하는 것이었다. 서울대학교 교수들의 이 이상 더 참지 못하겠다는 이른바 인간선언도 마찬가지다. 8월17일 밤에는 10대의 두 소년이 차 한잔이 옥수수 다섯 되 값이라고 분노를 폭발시키고 카 빈을 난사하였다.
농촌의 버림받은 소년들이 가정도 곤란하고 더 살고 싶지 않아 무서운 사고를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도 광주단지 사건 때처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비장한 소리가 깔려 있다.
지난 23일 군 특수 범들이 경인가도를 공포로 휘몰아 넣었다. 그들은『4년 동안 휴가도 못 가고 보리밥만 먹었다』,『대우가 나빠 국회의사당에라도 가서 항의, 우리 대우를 시정해야겠다』라고 하소연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더 참을 수 없다는 원한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는 행정당국은 어떠하였는가. 모산 사건이나 남영호 때와 마찬가지로 무책임하고 무성의하다. 이제는 재난이 대형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심층화해가고 있다. 그것은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의도적인 항의이며, 저항이다.
지금까지의 무리한 질서가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래도 사회체제에 메스를 가해야 하겠다. 그러므로 나는 먼저 국민의 중지를 모아 전체적으로 오늘을 진단하는 국정백서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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