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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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왜 갑자기 르네상스가 일어나고,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다·빈치 등 위대한 예술가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겠느냐?』
지금까지 역사가들이 시원스럽게 풀지 못하던 이 수수깨끼가 이체 풀려질 것 같다. 중-고교 교과서에는 르네상스 동인이 무역으로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번창하고, 시민들이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적혀있다.
대학에서는 부가 소수자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판파니의 설까지 가르치고 있다. 그 당시 신흥재벌·귀족들은 서로 경쟁하듯 호화로운 저택을 짓고, 예술품들로 생활환경을 장식해 나갔다. 이 예술품에서 르네상스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원에 가면 예일대학의 로페스 세파 같은 또 다른 세 명을 배우게 된다.
로페스는 정설과는 다리, 불경기가 르네상스 의 모태라고 보고 있다.
15세기는 유럽경제가 침체하던 때였다. 불경기로 장사가 한가해지고, 또 기업의 이윤율이 떨어지자 상인들이 문화에 관심을 돌리고 또 문화적 투자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의 사람들이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예술이나 문학 또는 수학적 몽상의 세계에 파고 들어가게 된 것은 경제가 불경기였기 때문이라는 것
이게 사실이라면 마캬벨리, 세르반테스, 토머스·모, 셰익스피어 등의 사상경향이 모두 비관론적이었던 까닭도 짐작이 갈 듯도 하다.
판마니와 로페스의 양론은 정반대 된다. 그러나 부의 축적과 집중이 르네상스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만은 견해가 일치되고 있다.
그렇다면 부가 소수자에게 집중되어 있고, 불경기가 있으면, 흑은 르네상스와 같은 예술 붐을 혹은 우리도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부의 편재는 분명히 있다. 최근에 전경련에서 발표한『업계 불황 실태 조사표』를 보면 우리네 불경기도 이만저만 심각한 게 아닌 모양이다.
경제계가 불경기를 하소연하고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쪼들린다해도 우리 나라에서 르네상스에 비길만한 예술의 비약이 있다면, 그것을 다행한 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절호의 기회를 갖게된 건 고맙게 여겨야 할는지도 모른다. 경제건설의 뒤를 이어 문화중흥을 이룩하겠다는 구호와도 상부되는 일이기에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르네상스란 우리에게는 꿈도 꾸지 못 할 일인 것만 같다.
르네상스 기의 상인들은 불경기 때 장사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우리네 기업가들은 그 러 지를 못한다. 그러나 이유는 그것 만일까? 수수께끼를 풀려다 수수께끼에 몰리는 꼴이 되고만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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