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26년만의 남-북 악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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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온 국민의 눈과 귀가 판문점에 쏠렸다. 20일 정오, 남북한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열기 위해 만난 남-북 적십자사 파견 원들은 판문점중립국감시위원단 회의실에서 탁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장방형탁상 한가운데는 야속한 군사분계선이 여전히 가로질러져 있었지만, 남북 파견 원들은 민족분단 26년만에 처음으로 겨레의 말로『안녕하십니까』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날 첫 대면이 이루어진 판문점중립국감시위원단 회의실주변에는 내외기자들로 붐볐으며 대한적십자사에서 자유의 다리를 거쳐 회의장에 이르는 길목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남북이산가족을 찾아주려는 민족적인 운동의 서막을 펼친 이날, 많은 시민들은 모두들 조용히 남북간의 첫 대화의 귀추를 지켜보았다.
대한적십자사 파견 원을 태운「세단」이 회담시작 4분전인 상오11시56분, 회담장소인 중립국 감시 위원회 회의실에 도착, 곧이어 50여명의 내외기자들을 태운「버스」가 들어섰다.
양쪽 적십자대표들이 만나는 중립국감시위원회 회의장 주변에는 이미 11시쯤부터 약 50명의 북괴보도원들이 녹색완장을 두르고 대기, 우리기자들이 도착하자『왜 이렇게 늦었소』 라면서 악수를 청했다.
이창열·윤여훈 두 파견 원이 까만 「머큐리·세단」에서 내려 남쪽 문으로 들어서 2개의 의자에 앉을 때까지 북한적십자사 파견 원들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약 2분 동안 이·윤 두 파견 원은 20평 남짓한 회의장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정방형탁자의 남쪽 편에 앉아 북한파견 원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만나기로 된 시간인 정오가 2분이 지난 뒤 북한적십자대표 서성철과 염종련 등 2명이 「체코」제 까만「세단」을 타고「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회의장에 도착, 북쪽 문을 열고 우리 대표가 앉아있는 탁자 앞으로 다가섰다.
회색「싱글」에 무늬 진「넥타이」를 맨 서·염 두 파견 원은 왼쪽가슴에「김일성」「배지」를 달고 있었다.
북한대표들이 들어서자 자리를 일어선 우리 이·윤 대표가『안녕하십니까. 나는 대한적십자 이창열 입니다』라면서 악수를 청했고, 이어 윤 대표가『안녕하십니까. 나는 윤여훈 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인사말에서 기선을 빼앗긴 북한적십자 서·염 두 파견 원은『반갑습니다. 앉으십시오』라고 의자를 가리키면서 굳었던 표정을 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안녕하십니까, 나는 적십자 회 중앙위원회 문화부 부 부장입니다』라고 했으나, 염은 자기소속을 밝히지 않고『안녕하십니까』라고만 말하고 미소를 띠었다.
양쪽대표들이 부드러운 인사말을 나누는 동안 회의장 밖의 양쪽기자 1백 여명이 일제히「카메라」의「플래쉬」를 터뜨리며 26년만의 취재경쟁을 벌이느라 회의장은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다시피 붐볐다.
약간 상기된 표정의 이창열 씨가 통성명이 끝나자마자 까만 서류가방에서 최두선 총재의 8·12 제안이 담긴 편지를 북한대표에게 건네면서『이것이 지난 8월12일 우리 최 총재께서 이산 가족 찾기 운동을 벌이자는 제안입니다』라고 말했다.
서성철도 흰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이것이 우리 손성필 위원장의 회신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보통 크기의 편지를 우리 쪽에 넘겨주었다.
양쪽 대표들이 편지를 교환하는 정방형의 탁자 위에는 양쪽 적십자기가 같은 높이로 놓여있었는데 북한대표들은 깃발의 크기에 신경을 쓴 듯 우리깃발이 도착한 뒤에 우리 것보다 조금 큰 깃발을 가져다 놓았다.
이씨가 『당신은 적십자에 계신지 얼마나 되십니까』라고 묻자 약 5초 동안 대답을 않고 난처한 표정을 짓자 이씨는 서를 어려운 질문에서 구해주려는 듯『저는 오래 있었습니다 만-』라 고 말을 하자서는『저는 얼마 안됐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때 서의 옆에 있던 염의 소속 및 직책이 무엇인지 몰라 기자들이 북괴기자들에게『이분의 직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북괴기자들이『우리도 모른다』고 말하자 어느 한 북괴기자가『그분은 지도 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남-북한 대표들이 만나는 극적인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외기자들이 붐 비는 바람에 회의장은 시끄럽고 어지러울 만큼 소란했는데 북괴기자들은『이렇게 경사스러운 날에 이게 무슨 짓들이냐』라고 스스로를 힐난하기도 했다.
이날 북괴기자들은 군사정전위원회 취재 때와는 달리 모두「카메라」와 수첩을 꺼내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회담 장 주변을「스케치」했다.
어떤 북괴기자는『이제는 마음놓고 만나게 됐다』면서 환호성을 올리며 취재에 정신이 없는 우리 기자들을 껴안기도 했다.

<임시 취재반명단>
◎반 장=정덕교 사회부 차장
▲사회부=최규장 이돈형 김경철 김재혁
▲주간부=안기영
▲사진부=이창성 김정찬 송영학
▲지방부=장호근(문산 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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