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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제자는 필자>|<제16화>한-미 합동첩보비화「6006부대」(15)|윤일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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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적 후방에 첩보망>
민족의 비극을 초래한 6·25동란- 북한괴뢰는 총칼로 아름다운 이 강산을 적화하려 했지만 우리 국군용사들은 낙하산을 메고 적지에 뛰어내려 피로 물든 불모지대에 평화의 씨앗을 키우는 한줌의 흙이 되거나 밀 알이 되어 겨레의 가슴에 자유를 되찾아 주었다.
낙동강까지 전선이 옮겨졌을 때 항공첩보작전 면에서는 임무수행에 있어 많은 애로가 해결되지 못한 채 남겨져 있었다. 급속한 아군의 전략 장 후퇴로 적 진격예상지역에 대한 충분한 첩보망구성과 통신연락방법의 미달로 시기에 맞는 정확한 적정파악이 어려웠던 것이다.
공군정보당국에서는 당시 정보고문관 격인「니콜스」씨와 협의, 50년 8월초부터 낙하산으로 적 후방에 대원들을 투하, 첩보망을 구성하는 방법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다행하게도 이때 공군에는 풍부한 낙하산 강하경험과 실전경험을 갖고있는 요원들이 있었다. 이들 중 김갑출 상사(준위 제대)는 제2차 세계대전중인 42년 2월15일 일본육군이「수마트라」의 유전지대「파렘방」에 낙하산 투하공작 작전을 벌일 때 직접 참전한 우수한 특수작전 기간요원이었다. 그는 1백20여 회의 강하 경험을 갖고 있었다.
공군특무부대는 앞으로 벌일 각종 낙하산침투 첩보작전에 대비, 이들 기간요원과 새로 공군에서 모집한 요원을 50년8윌22일 1차로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로 보냈고 같은 해 9월7일과 9월18일에는 제2차 및 제3차 훈련요원 등 모두○○○명이 일본미군기지로 급파됐다. 이들은 이곳 미군기지에서 낙하산훈련·유격전·도피와 생존에 관한 훈련·특수첩보수집요령·특수 송수신기 조작요령등 단기간 훈련을 받고 귀국했다.
공군정보당국은 훈련을 받고 귀국한 대원들을 한밤중에 적지로 공중투하, 첩보망 구성과 첩보수집에 전력하는 한편, 한쪽으로는 대구근방에 비밀기지를 마련, 공군 및 각 군 공중투하요원의 국내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52년 초에는 공군특무부대산하에 낙하산관계 작전을 전담하는 ○○○부대가 별도로 창설되어 이 모 대위(중령제대) 차 모 상사(대위제대)등이 특수요원의 양성과 작전지휘를 맡아 빛나는 공훈을 많이 세웠다.
공군특무부대가 제일 먼저 적지에 낙하산으로 특수요원을 투하시킨 것은 50년 8월1일이었으며, 이때는 아직 일본주둔미군기지에 제1차 훈련요원을 보내기 전 이었는데, 전라도와 경기도지방에 공군이 갖고있던 요원을 투입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낙하산 첩보작전을 전개한 것은 일본미군기지에서 대원들이 돌아온 후였다. 9·28서울수복 직전에는 문산 방면에 대원들을 투입, 서울로 진격해오는 아군을 위한 특수작전을 하기도 했다. 특히 51년 이른 여름 평북지구에 투하된 유모 중사 등 21명의 대원들은 장기간 대담무쌍한 작전을 벌였으나 무 운이 다했는지 괴뢰에 붙잡혀 거의 전원이 처형된 애석한 일이 있었다.
이들은 괴뢰군 군관(장교)과 전사(사병)로 가장, 완전한 괴뢰군과 같이 부대행동을 하며 수개월동안 적의 보급품까지 받으며 평 남북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비밀주요군사시설폭파, 신속한 첩보수집과 연락, 아군 기에 대한 항공공격목표의 지상유도, 적 지휘계통의 교란 등 적의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빛나는 공훈을 세웠으나, 끝내는 위장부대임이 적에게 폭로되어 평양에서 모두 처형되었다. 북괴는 이 사실을 방송하기도 했는데, 처형된 대원 중 1명이 총탄을 맞고 죽은 것처럼 엎드려 있다가 탈출, 구사일생으로 사선을 넘어 돌아옴으로써 대원들의 최후 모습을 우리는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의 귀신도 놀라는 용감하고 대담한 활동과 그 불멸의 찬란한 전과는 길이 비밀전사에 빛날 것이며 다시 한번 조국의 통일을 위해 비명에 간 그들의 넋에 만강의 경의와 애도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처음에는 낙하산첩보대원들이 단기교육을 받은 데다 작전경험이 없어 적지에서 천신만고의 어려움을 겪었고 얼마 후에는 북괴가 낙하산이 투하된 지역 주민들을 얼마나 총칼로 위협했던지 대원들의 고초는 이루다 말할 수 없었다.
일부 대원들은 낙하산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다 적탄에 맞아 공중에서 숨을 거두는가하면 일부대원들은 엉뚱한 곳에 떨어져 예기치 못한 고생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낙하산 작전에 있어서의 우리의 인적 손실은 적은 것이 아니었다. 당시낙하산 정보요원들의 수송을 전담한「유엔」군 수송기 조종사들이 한국지리에 익숙지 못한데다 야음을 틈타 투하했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이들 수송기도 비밀 특수작전상 엄 호기가 따르지 못하는 단기행동 때문에 수송기가 입은 피해 또한 적지 않았다.
특히 잊지 못할 일은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와 대구비밀기지에서 훈련시킬 낙하산 특수요원을 모집할 때 애국심에 불타는 수많은 학생들이 지원해 왔던 일이다. 이들은 교육을 끝낸 다음 적 후방 요지와 적 주요집결지 및 보급로 부근 등에 뛰어내려 용감하게 각자 맡은바 특수임무를 수행했으나 많은 인원이 채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로 숨져간 것이다.
세계 제2차대전후 가장 큰 격전장이었던 한국전선에서「니콜스」씨는 그의 불요불굴의 투지와 임무에 대한 철저한 책임감·냉정 성, 그리고 외국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용감성과 자기희생, 외모와는 전혀 다른 치밀하고도 원대한 계획과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자유전선에 있어서 아직도 풀리지도 않고 잊혀지지도 않는 전설적인 신화적 존재로 오늘의 항공첩보작전사상에 기록되게 되었다. 특히「니콜스」씨의 직속 대원으로서 특 공 작전수행 중 어느 때나 한국인의 모든 사정에 최대의 이해와 호의를 갖고 돕고자 애썼던「피터슨」씨도 우리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었다.
명예를 포함한 모든 감정을 전혀 표시함이 없이 오로지 묵묵히 임무수행에만 최대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하며,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남몰래 생명을 불살라야하고, 설사 죽음이다가와도 임무내용을 발설하지 못하고 홀로 외롭게 숨져가거나 또는 전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더라도 보안상 이를 세상에 공표하지 못하는 비밀 전 근무 자들의 많은 활동 중 시일이 지난 것 한 조각만 지금까지 추려서 소개한데 불과하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상세하게 소개할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들과「니콜스」씨 등 한미장병들의 변함없는 건투를 빈다. 또 비밀 전 근무 중 애석하게도 유명을 달리하여 호국의 영령으로 화한 수많은 전우들의 영령 앞에 삼가 경건한 마음으로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며 발전하는 조국의 영광된 밑거름이 되기를 다짐하면서 이 글을 끝맺는다.
※다음 17화는 이종우씨의 서양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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