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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소설 65년…내일의 좌표|본지「전작중편연재」4작가 좌담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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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06년 6월 의 암 손병의 선생의 발의로 창간된 국·한문 일간지「만세보」는 당시 주필이던 이인직 씨의 소설『혈의 누』를 연재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소설은 국문학사살 최초의 신소설이었다는 점에서, 또 우리 신문사상 최초의 신문소설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 왔다.
우리 신문소설의 형태가 처음부터 일본 신문소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나라 첫 신문소설이 우리 문학사상의 첫 신소설이었다는 점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만세보」이후 해방까지 우리 문인들의 문학활동이 극소수의 잡지 외에는 신문에 집약되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서라도 신문이 우리 문학발전에 공헌한 바는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 나라 신문소설의 역사도 65년.「흥미본위」,「매너리즘」…등 비판의 소리가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가운데 과연 신문소설은 독자-작가-신문사이에 평행선으로만 존재할 것인가. 22일부터 본지에 새로 시작되는「전작중편연재」에 참여하는 작가의 좌담을 통해 새로운 신문소설의 좌표를 그려본다.
구미에서는 순수문학을「시어리어스·리터레이처」(Serious Literature)라고 해서 대중문학(혹은 통속문학)과 구별하고 있지만 동양에서는 그 양자사이에 중간문학이 존재하여 신문소설의 형태로 독자의 층을 넓혀 왔다.
중간소설의 특성 때문에 신문소설은 오락적인 요소와 탐구적인 요소의 양면을 지니지 않을 수 없었으나 최근 몇 년 동안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기능, 즉 신문소설의 오락적인 요소가 타락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것은 사회상황이 각박해질수록 대중들은 오히려 진지한 것을 요구한다는 일반적 논리에 완전히 어긋나는 경향이었다. <서기원>
고전적 의미를 벗어난 신문소설의「섹스」는 신문소설의 가치관을 붕괴시켰다. 신문소설을 쓴다는 것은 작가자신에게도 커다란 모험이다. 외부적인 영향 때문에 작가가 무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적어도 신문소설의 기본적인「틀」은『밀실의 독백보다는 광장에서의 포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인훈>
안정되고 변화 없는 사회의 작가보다는 변화 많은 사회의 작가들이 훨씬 쓸 얘기가 많을 것이다. 더구나 변화 많은 상황아래서 신문소설의 개방은 작가에게 활동의 폭을 넓혀준다는 뜻에서 꽤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신문소설이 제약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은 특수한 사정으로 고려돼야할 것이나 문제는 역시 작가에게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 <박순녀>
신문소설이기 전에 문학이라는 점이 강조돼야한다.
신문소설이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중간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라면 이제까지 우리 신문소설은 대중 문학 쪽에 더 가까운 듯한 느낌을 주었다.
신문소설과 순수문학사이에 새롭고 단단한 가교가 마련돼야할 것이다. <최인호>
4작가들의 이야기는 신문소설이 그 성격상 오락적인 요소를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문학을 떠날 수는 없다는 데로 귀착하고 있다. 그러면 신문소설이 문학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서기원씨는 신문의 독자층이 너무 넓기 때문에 작가와 신문이 그 광범한 독자층의 구미를 고루 맞추려다보면 오히려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고 지적, 오히려 순수문학독자로부터 시작하여 신문소설독자의 폭을 넓혀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순녀씨는 순수문학성과 신문이 요구하는 기본적 재미를 양립시키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작가가 신문소설을 쓰게 되었을 때 우선 느끼는 중압감에서 해방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인훈씨는 좀 다른 차원에서 신문소설의 앞날을 내다보고 있다. 최씨는 분화된 언론의 기능가운데 한 가닥을 신문소설이 맡아야하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이에 따라 삶의 직접적 경험전달 따위에서 신문소설의 발전적인 무엇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기원씨는 여기서 필요불가 결한 것은 독자와 신문과 작가사이의 의식의 교류라고 볼 수 있는데 60년대에 들어와 의식교류는 흩어지고 분열된 양상을 띠었다고 분석했다.
서씨의 이야기는 60년대의 신문소설이 오락적인 면에의 집착으로 가치관을 떨어뜨리면서 신문소설은 신문, 작가자신, 그리고 독자들에게 한낱 소모품 같은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문소설은 결코 소모품일수 없다는 게 4작가의 공통된 견해였다.
독자가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신문이 그러한 가치 있는 작품연재에 보람을 느끼고, 그리고 작가자신이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 바람직한 내일의 신문소설 상이라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67년에 이어 다시 특별 기획한 4작가 전작중편 연재는 이러한 작가들의 책임의식 속에서 결실을 거둘 것이 틀림없다. <정리=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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