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북의 혈육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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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버지에게>(「국경의 밤」시인 김동환씨)
아버지와 지내던 몇 가지 추억이 나무처럼 자라고 있습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언제나 햇빛이 맑고 따뜻하게 비치는 듯 합니다. 아침이면 동생과 함께 아버지 손을 잡고 웃고 뛰며 오르던 동숭동 집 뒤 낙산의 추억-그 산의 향기, 다리에와 휘감기던 이슬 맺힌 풀잎들의 감촉조차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우리 집이 보이는 곳에까지 오면 『저기서 엄마가 흔들흔들 밥짓고 있겠지?』하고 아버지는 말씀 하셨지요.
아버지의 얘기를 듣거나 남기신 글들을 읽으면 아버지 영혼이 그대로-마치 심장을 맞댄 듯이 제 마음으로 느껴져 깊은 사랑을 느끼옵니다. 아버지의 일생이-정이 많고 꿈이 많아 겹게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일생으로 제 눈에 보여집니다.『어릴 때 고기잡이 열기 따기 하던 앞내 강변 백사벌에는 해당화 무더기 속에 어머님 무덤과 두 누나와 두 형님의 다섯 무덤이 풀이 파란 채 가지런히 누워 계시니…』하고 쓰신 것이나 『분명 다 넘었는데 또 산이오 다 건넜는데 또 물이라, 가도 가도 초인이니 가마귀도 길 멀어 운다. 이사이를 묶여 가는 이 신세 살아 회로 있을까. 열자 길에 열 두 번도 더 쉰다. 벌써 서릿바람에 철갑 찬 내 수족은 제살 아닐러라(일제 때 사상범으로 영월을 지나며)』하는 대목을 읽을 때는 눈물이 났읍니다.
『네 애비처럼 고생한사람도 정말 없을거다. 일제시대 때는 늘 형사한테 쫓기더니, 해방되니까 이번에는 반민 특위라는데 걸리고…서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도 서툰 남자가 바로 그 사람이야.』 어머니가 말씀하셨읍니다.

<죽음의 세월>이라고 어느 분이 쓰신 글을 읽어보니 아버지는 또 그곳에서도 누구보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신다고 하였읍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에고 있기 마련인 따뜻한 인정이 있어 아버지에게 한 가닥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정말 다시 뵐 수 있을는지요. 좋은 세월이 돌아와 꿈같은 그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부디 살아만 계셔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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