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낭」의 절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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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남·북 가족 찾기 회담을 갖자는 대한적십자사의 12일 제안은 완전히 말복더위를 잊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 실현가능성도 그 제안의 무조건적 성격으로 보나 최근의 국내외의 정치·외교정세로 보나 가장 짙다. 온 국민이 20년 동안 달래어 오던 피맺힌 심정이 일시에 터질 듯 벅찬 감동으로 물결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국동란은 1천만명의 실향민을 만들었다. 1천만개의 망향의 마음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망향이란 고향 땅만을 그리워하는 마음씨는 아니다. 고향의 정답고, 그리운 사람들의 연상이 있어 비로소 참다운 망향의 애틋한 심정이 익어가게 될 것이다.
월남한 사람들이 고향을 못 잊는 까닭은 고향에 남겨두고 온 집이나 논마지기가 아쉬워서는 아닐 것이다. 고향에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뭣보다도 앞서고 있을 것이다.
망향에는 감상이 따른다. 그러나 우리네 「실향민」에게는 감상에만 젖고 있을 여지가 없었다. 납북인사의 가족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었다.
1천만명의 이런 애처로운 마음을 적십자사가 등에 업고 있는 셈이다. 적십자를 통해서만 이런 제안을 할 수 있다는 우리네 딱한 현실을 서러워할 때는 아니다.
적십자에는 「지등원리」라는게 있다. 그 제4조에는 『각국적십자사업의 근거는 국민에 대한 인도적 이상의 전달과 인류의 고통을 예방경감 시키려는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사랑과 평화의 정신이 이것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1859년 「이탈리아」 통일전쟁 때 「솔페리노」의 전장을 지나던 「스위스」의 한 청년실업가 「뒤낭」은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는 외로움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부상병들을 보았다. 『아! 모두 다 같은 인간인데…』 이런 그의 절규에서 적십자운동이 일어났다.
따라서 적십자는 전시에만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1차 대전 직후 45만명의 전쟁포로를 송환한 것도 적십자를 통해서였다. 전쟁으로 인한 실향가족, 실종한 친지 찾기에 가장 앞장서기도 했다. 2차 대전 후에 제일 먼저 원자무기금지를 결의한 것도 국제적십자였다. 그리고 이번 이산된 가족 찾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도 물론 국제적십자사이다.
이런 광범위한 활동이 가능한 것은 그게 국경·인종·종교의 차별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제안에 대한 기자질문에서 최두선 총재는 『이북 적십자사로서도 반대할 아무 이유가 없다』고 단정적으로 잘라 말했다.
이쪽에 1천만명의 실향자가 있으면 저쪽에도 이들을 애타게 찾고 있는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가족이 있을게 분명하다.
『아! 모두 다같은 인간인데…』하던 「뒤낭」의 절규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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