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퍼스낼리티|<컷·김사달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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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며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선서하노라….』 이른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첫 구절이다. 의과 대학을 졸업하면서 의사들은 질병의 고통에서 신음하는 환자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서약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엄숙히 서약한 의사들의 세계에 최근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사회로부터의 인술 강요와 부당한 처우가 못 마땅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들이 일반 대학과는 달리 6년이라는 길고 고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어려운 의사 고시를 패스했다는 사실에 긍지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하고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경향이 짙다. 이러한 의사의 퍼스낼리티의 특징과 구조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대학 생활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의 대학 생활은 일반 대학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다.
2년 동안의 예과 과정은 4년제 대학 과정을 압축한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의학의 기초 지식을 터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인격자로서의 기초 지식을 연마하는데 예과 교육의 목적을 두고 있다. 각 대학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예과 교육은 극히 엄격하다. 따라서 정원의 1할 정도는 본과로 진급하지 못하고 예과 생활을 더하는 것이 보통이다.
본과 교육은 스파르타식 교육을 방불할 정도로 엄격하다. 수업은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끝난다.
1, 2학년 때는 주로 기초 의학을 배우며 임상 의학은 3, 4학년에 배운다. 본과 과정에서 배우는 과목은 모두 27개 과목이나 된다.
기초 의학 과정에서는 인체 해부학을 비롯해서 조직학, 태생학, 생화학, 생리학, 병리학, 미생물학, 약리학, 기생충학, 예방의학, 임상병리학, 진단학 등을 배우며 임상의학 과정에서는 내과학, 일반 외과학, 정형외과학, 신경외과학, 흉곽욋과학, 산과학, 부인과학, 소아과학, 피부과학, 비뇨기과학, 이비인후과학, 안과학, 정신과학, 방사선과학을 배운다.
이처럼 방대한 분량을 배우는 의과 대학생들의 생활은 『집-강의실-도서관』이라는 「사이클」을 맴돌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들의 지성인으로서의 긍지는 대단하며 의과 대학을 마치는 동안에 학업에 쫓기다 보면 자칫 이기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되어버리곤 한다.
의과 대학 사회처럼 경쟁이 치열한 곳도 드물다. 치열한 경쟁의 희생자 및 낙오자가 많아 졸업할 즈음에는 입학 당시의 동기들 절반이 보이지 않는게 보통인 것이 욋과 대학이다.
자제를 욋과 대학에 보내는 부형들의 부담 또한 일반 대학과는 비교가 안된다. 작년 S의 대 졸업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부산에서 미곡상을 하면서 큰아들을 의대에 보낸 김모씨는 자기 아들이 졸업장을 보이자 『이게 2백만원 짜리구나』하면서 눈물을 흘려 주위에 있던 학부형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그는 64년부터 70년2월까지 자기 아들에게 보낸 돈을 전부 계산해 보았더니 무려 2백만원에 달하더라는 것이다.
언젠가 대학을 졸업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1백만원쯤 된다고 밝힌 사람이 있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의사가 되는데는 갑절의 경비가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의사 초년생들은 대부분이 「인턴」 생활을 겪으면서 그들이 대학 시절에 지녔던 지성인으로서의 긍지에 금이 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토로한다.
또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는 일을 탐구하고 실천함을 본직으로 삼는다는 의사의 윤리가 떠오를 때마다 의술은 환자 측으로 본다면 인술이어야겠지만 의사에게는 오히려 인술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특히 자기들의 봉급이 기껏 2만원도 못되는데 국영기업체에 근무하는 동년배들은 4만원에서 8만원까지 받는 현실을 볼 때 자기 직업에 회의마저 느낀다고 의사들은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고 엄숙히 선언한 의사들이 환자 곁을 떠나야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사회가 선뜻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다.<김영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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