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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심한 도서외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불황의 출판계가 그 불황의 돌파구로 마련했던 외판제도의 부작용이 차차 더 심각해져 가고 있다.
독자들이 책을 찾으러 서점에 가지 않고 또 출판사들이 서점을 불신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던 외판제도로 책의 질이 전체적으로 나빠졌고 출판사가 외판경비를 과다하게 지출, 출판사에 돌아오는 이익이 적은 반면 정가가 비싸져 독자의 부담만 늘어났다.
우리 나라에서 일부 외판이 처음 시작된 것은 58년 간행된 학원사의 『대 백과사전』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때는 출판사도 무리하지 않게 매월 한 권씩 책을 냈고 독자의 부담도 줄어 호평을 받았었다.
그 후에도 외판제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5년 전부터 「붐」을 이루어 무질서하게 경합, 출판사들은 국민의 독서개발을 위한 양서출판은 기획하지 않고 외판용 기획에만 전력을 쏟아왔다.
월부외판을 위해서는 적어도 5권 이상의 전집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한 권으로 낼 수 있는 책도 무리하게 여러 권으로 쪼개고 비싸게 하기 위해 필요 없이 호화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집물들이 차차 방대해지고 호화판이 되는 것은 책을 장식용으로 하려는 독자들의 경향을 맞춘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또 비대해진 외판조직의 압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출판관계자들은 말한다. 외판원들은 한길을 파는데 드는 노력은 똑같고 이익배당은 많기 때문에 대중에 영합하는 방대한 전집물을 요구하는 것이다.
요즘 출판계에는 학술적인 책만 내는 몇몇 출판사와 또는 전집물의 발간능력이 없는 출판사만 단행본을 내고 있고 그 외의 출판사들은 모두 전집물에만 열을 쏟고 있다. 또 이러한 출판사들은 1, 2종의 방대한 전집물에 사운을 건 전력을 집중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출판이 문화사업이 아닌 투기사업으로 돼버렸다.
한국출판학 회장 안춘근씨는 출판이 투기사업 같이 된 것은 한국의 출판이 기업화·과학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한 권의 단행본을 낼 때도 독자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등 이론적인 연구가 앞서야 할 것을 주장한다.
월부외판제도로 출판사들은 많은 전집물들을 만들어 팔아왔지만 거기에서 별다른 이익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불경기를 겪고있다.
출판사들이 전집물의 외판에 들이는 경비는 정가의 5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판원 중에서도 처음 주문 받는 사람이 정가의 15∼20%의 이익배당금을 수금하기도 전에 받는다는 것이며 다음 배본원이 10%, 또 수금원이 15%를 각각 배당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외판원을 감독하는 관리사원을 두어야 하며 외판원들의 사고에 대비한 손실률, 월부에 대한 금리, 또 출판사의 이익금 등을 모두 정가에 합치면 책의 원가가 정가의 30%나 될 것인지 의심스러워 진다.
독자들은 결과적으로 얼마 안 되는 원가의 책을 비싼 정가에 사고있다는 셈인데 이것은 독자들이 책을 찾아가지 않고 책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대한 대가인지도 모른다.
요즘 대부분의 큰 출판사들은 자체 내에 방대한 외판조직을 갖고 있다. 또 출판사들은 유능한 외판원을 확보하기 위해 배당금을 올려주는 등 치열한 경쟁까지 벌이고 있다.
자 외판조직이 없는 출판사들은 외판「센터」 위탁 판매하고 있는데 외판「센터」들은 자기 자본 없이 남이 만든 책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기현상을 빚고 있다.
출판계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이 외판제도를 출판사들이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실정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효과적인 새로운 판매제도가 나오기까지는 이 판매제도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출판계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독서하는 습관부터 길러져야한다. 그러나 대중을 계몽해서 바로잡기는 시일이 너무 걸리며 또 한국의 출판업계는 너무 연약해서 혼자만의 성장을 바라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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