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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씻을 때 마음에서 씻겨나가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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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편집주간

우리가 손을 씻을 때 마음에서도 뭔가가 씻겨나간다. 실패를 겪은 후 부정적 감정이 이런 예다. 지난주 독일 쾰른 대학교 연구팀이 ‘사회심리학과 성격 과학(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에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다.

연구팀은 98명의 자원자를 세 집단으로 나눴다. 이 중 두 집단에 해결이 불가능한 과제로 시험을 치러 좌절을 맛보게 한 뒤 한 집단에만 손을 씻게 했다. 이어 모두에게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손을 씻은 집단은 그러지 않은 집단에 비해 다음 시험을 낙관하는 정도가 훨씬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두 번째 시험을 치르게 한 결과 이들의 성적은 씻지 않은 집단에 비해 상당히 저조하게 나타났다. 애초에 1차 시험을 건너뛰고 2차에 처음 참가한 세 번째 집단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연구팀은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실패한 뒤 손을 씻으면 부정적 감정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다음번 시험에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려는 동기가 약해진다.”

 가장 유명한 것은 죄의식이 줄어드는 ‘맥베스 효과’다. 2006년 9월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논문을 보자. 사람들에게 W□□H와 S□□P의 빈칸을 채우게 하자 자신의 부정적 행위를 떠올린 사람은 WASH, SOAP라는 답을 60% 더 많이 내놓는 것으로 나타났다. 긍정적 행위를 떠올린 사람들은 WISH, STOP 이라고 답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구심이 줄어들어 사후 합리화의 필요성이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미시간 대학 연구팀이 2010년 5월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대학생들에게 CD 30장 중 자신이 가지고 싶은 10장을 골라 순위를 매기게 했다. 이어 순위 5번과 6번 중 한 장을 선택해서 가지게 했다. 그 후 한 집단만 손을 씻도록 유도한 뒤 선호 순위를 다시 매기게 했다.

그 결과 손을 씻지 않은 집단은 두 장의 CD 중 자신이 선택한 것을 이전보다 더욱 높이 평가하고 선택하지 않은 것은 더욱 낮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후 합리화의 전형적 행태다. 하지만 손을 씻은 사람들은 이 같은 행태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의 결론은 명백하다. ‘손을 씻자. 비관주의, 죄의식, 의구심을 씻어내자. 그리고 다음에는 좀 더 잘하기로 결심하자’.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