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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제2, 제3의 이석기 막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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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
국가안보법

“소집령이 떨어지면 바람처럼 순식간에 오시라. 그게 현 정세가 요구하는 우리의 생활태도이자 사업 작풍이고 당내 전쟁 기풍을 준비하는 현실 문제임을 똑똑히 기억하시오. 현대전은 심리전이고 사상전으로 선전·선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북한에 호응하여 국가기간시설에 대한 타격이 가장 중요하므로 평택 유류저장고, 철도 통제시설, 통신 교란을 위해 관문전화국인 혜화전화국과 분당전화국 파괴. 장난감 총기를 살상용으로 개조하는 방법, 인터넷을 통한 사제폭탄 제조법, 무기고나 화학약품 저장고 등의 소재를 지속적으로 파악하라.”

 현직 국회의원 이석기 체포동의서에서 지적한 범죄 사실의 일부다. 그들은 “정세의 엄중함, 심각함, 긴박함을 공유한 시간이었다”면서 타격 실행 방안을 논의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법적 신분은 무엇일까? 반국가단체와 내통했다면 반역죄를 저지른 범죄자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반국가단체와의 내통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면 무죄일까? 그렇지도 않다. 반국가단체와 내통하지 않은 정치적 목적의 무차별 폭력 행사자를 국제규범은 테러리스트로 분류한다. 그 가운데 국제테러조직과 연계되지 않은 테러분자들을 ‘외로운 늑대’, 즉 자생적 테러리스트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외로운 늑대는 공안당국에 검거될 경우 “할 말이 없다”고만 말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지금 관련 피의자들이 묵비권을 행사하는 모습과 닮았다.

 문제는 외로운 늑대가 구체적인 범행을 실행했더라도 이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총체적인 정보가 없는 경찰이나 검찰은 이에 대해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정도의 단순 치안범죄로 접근해 단편적인 수사에 그칠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테러를 격퇴하기 위한 정보기구 고유의 수사권과 테러방지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석기 사건은 본질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파괴이자 일반 시민의 자유와 안전을 침해하는 인권유린 범죄라고 생각한다. 내란음모 사건을 보고도 국정원의 기능적 혁신이 아니라 임무 폐지를 거론하는 것은 국가를 포기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는 무책임한 발상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과거 정보기구의 일부 잘못에 대한 반성과 무한경쟁 시대에 맞춰 새로운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정보체계를 혁신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국정원 혁신이 소위 댓글 사건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인식이라면 정치적 억지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국회가 국정원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당위론도 이해한다. 그러나 문제는 국회가 국가정보기구의 개혁을 담당할 만한 준비가 돼 있고 전문성을 갖췄는지 여부다. 과연 국가정보의 의의와 기능,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정보기구의 진정한 임무를 제대로 이해하는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될까? 원래 정보기구를 정치에 악용하는 가장 큰 책임자가 최고통수권자와 정치권이라는 것은 정보학에서는 ABC다. 이런 유혹 때문에 잘못된 최고통수권자나 정치권이 정보기구를 수족처럼 활용하면서 온갖 악역을 맡겨온 것이 정보기구의 역사이기도 했다. 일부 몰지각한 정보 수장이 정치권의 그런 요구를 개인적인 야망과 결부 지어 정치에 밀착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국가정보는 글로벌 무한경쟁의 망망대해에서 주권국가의 현명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국가정보 없는 국가 운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여야는 이석기 사건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첫째, 지하당의 관점에서는 이석기는 이미 버리는 카드다. 제2, 제3의 이석기가 이 시간에도 지하세계에서 준비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자생적 불만세력에 의한 헌정질서 파괴행위에 대한 선제 예방을 위해서도 조속하게 테러방지법을 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국가안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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