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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일|최순우<국립박물관 미술과장·미술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세상에는 별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 있기는 하지만 요즈음에 내가 듣고 놀란 이야기에는 아마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한국에 살던 모든 일본사람들이 밤낮으로 불안에 떨던 8·15 직후, 당당히 「트럭」한대를 거느리고 부여박물관에 찾아와서 그곳에 남아있던 일본사람 직원에게 부여 유적에서 발굴한 백제문화재를 자기에게 팔라고 요구한 늙은 일본사람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오꾸라·다께노스께」, 그는 당시 대구에 살면서 남선 전기 사장을 하던 백만장자였으며 또 한국문화재의 대 수집가이기도 했었다. 이 요구를 받은 부여박물관의 일본 사람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부여 박물관의 물건은 나라의 재산이다. 나라의 재산을 내 개인이 어찌 팔아먹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더니, 그때 「오꾸라」는 『지금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은 망했지만 조선에는 새나라가 설 것이 아니냐』해서 단호하게 거절했더니 「오꾸라」는 대전에 있는 「가루베」(경부자은=공주 교육계에 있으면서 그 근처의 백제 고분을 사적으로 많이 발굴해서 유물을 산일 시킨 위선자)가 소장하는 백제 문화재를 사서 싣고 갈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가루베」는 대전에 물건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오꾸라」가 그 「트럭」에 사서 싣고 갔음이 분명했으며, 부여 박물관의 그 일본인 직원은 그 「가루베」의 물건을 봐두기 위해서 일부러 대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오꾸라」는 그후 그 물건들을 어떻게 일본으로 반출해 갔는지 못 가져갔는지 분명한 정보는 없지만 일본에 귀국한 「오꾸라」는 「지바껭」 시골에 큰 창고를 세우고 수천 점의 한국 문화재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는 「소창우화재단」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그 문화재를 관리하고 있는 중이다.
몇 해 전 「오꾸라」가 살던 대구의 저택 마룻장 아래에 숨겨 두였던 문화재 수백 점이 발견되어 한때 신문의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한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지만 「오꾸라」는 미처 가져가지 못한 것까지도 그렇게 악랄하게 숨겨두고 권토중래를 꿈꾸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왜정 때 수십 년을 대구에 살면서 호리꾼(고분 도굴자)을 시켜서 민족의 중 보를 도굴시키고 호리꾼들이 경찰에 잡히면 그 권세를 이용해서 뒤로 풀어주면서 호리꾼의 원흉노릇을 했었던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그러한 「오꾸라」가 한국이 독립이 된다는 마당에서 까지지도, 그리고 모든 일본 사람들이 신명의 안전에만 부들부들 떨던 당시 「트럭」을 몰고 박물관 문화재를 사려고 나타났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가루베」라는 사람도 소위 교육자 입네, 학자 입네 하면서 도굴문화재를 빼돌렸다가 이 나라가 해방되는 마당에까지 끝끝내 많은 한국인 제자들을 배신했던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임이 분명하다.
몇 해 전 「가루베」가 죽기 전에 공주에 찾아온 일이 있었고, 그때 공주를 비롯한 그 지방의 옛 제자들이 그를 크게 환대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지만 우리 한국사람들은 아마도 미운 사람을 미워할 줄 모르는 족속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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