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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아동 지키는 마을공동체 … '풀뿌리 복지' 이끈 억척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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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이혜숙 사회복지팀장(오른쪽)과 우산동 주민들이 북카페 ‘마을애’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광역시 우산동은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곳이다. 전체 주민 1만여 가구 가운데 65%가 저소득층이고, 그중 2500여 가구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이런 마을에 어떻게 하면 행복을 심을까 고민한 공무원이 있다. 우산동주민센터 이혜숙(55) 사회복지팀장이다. 궁리 끝에 그는 “주민들끼리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론지었다. 가진 것은 적어도 서로 나누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정겨운 마을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사업 이름은 우산동의 옛 이름을 따 ‘잉계(孕鷄)마을 가꾸기’로 했다. 그러곤 주민들을 직접 만나 참여를 유도해 나갔다. 대표적인 게 ‘홀몸 어르신 돌봄사업’. 중학생 50여 명이 혼자 사는 지역 할아버지·할머니 100여 명을 수시로 찾아 안부를 살피고 말벗이 돼 주는 활동이다. 여기에 참여 중인 광산중 1년 이설(13)양은 지난 18일 우산동의 낡은 시영 임대아파트를 찾아갔다. 홀몸 어르신 돌봄사업을 통해 결연을 맺은 유복례(85) 할머니 집이다. 이양은 유 할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며 학교 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유 할머니는 “여기저기 아파 밖에 나가기가 쉽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않고 지나가는 날이 많다”며 “어린 학생들이 매주 찾아와 친손녀라도 되는 것처럼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고 심부름도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또 주민들이 나서는 ‘학생 안전지킴이’를 만들었다. 올 1월에는 치과의사 박병기(46) 원장이 기부한 건물에 북카페 ‘마을애(愛)’를 차렸다. 주민들로부터 2500여 권의 책을 기증받아 도서관을 꾸몄다. ‘마을애’는 ‘잉계마을 주민 활동가’를 양성하는 마을학교 역할도 하고 있다.

 사업이 하나둘 결실을 거두자 이젠 직접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내 실행에 옮기게 됐다. 마을신문을 만들고 아이들을 위한 안전보행로 지도를 제작했다. 걷고 싶은 길을 조성해 벽화를 그리고, 방치된 땅에 생태공원을 만드는가 하면, 공연·전시회 등 문화행사도 열었다. 주민들이 주도해 마을을 변화시키고, 거기서 보람을 찾아서 또 다른 아이디어를 내놓는 식의 ‘선순환’ 구조에 접어든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결실을 거둔 우산동 잉계마을 가꾸기는 ‘주민 참여형 복지·돌봄 공동체’의 모범 사례로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요즘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의 벤치마킹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다. 잉계마을은 올 1월 ‘광주시의 마을만들기 사업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 팀장은 28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시상식이 열리는 ‘제37회 청백봉사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팀장은 “과거 우산동은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특성상 강력범죄 발생률, 주민 자살률이 높아 ‘하루빨리 떠나고 싶은 동네’였다”며 “이를 ‘오래 머무르고 싶은 동네’로 바꾸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서로를 보듬어 안는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대 초반 전남도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이 팀장은 1990년 광주 여성의전화 설립에 앞장섰으며, 2008년 광산구의 전국 첫 여성·아동 보호 조례 제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팀장은 “결국 지역을 변화시키는 것은 풀뿌리인 주민들”이라며 “앞으로도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도록 하는 ‘마중물’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광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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