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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중시 정책에 무슨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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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교수
전 주한 미국대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포기하고 미 의회의 정치적 병리현상을 다루는 일에 집중한 건 옳은 일이었다. 하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선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의문이 되살아났다.

미국은 전쟁을 비롯한 난제가 수두룩한 중동으로부터 기회의 땅인 동아시아로 자원과 관심을 대거 확대하는 일을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자랑하는 이 정책은 즉각 의도하지 않은 문제에 봉착했다. 유럽에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로 중동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줄었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많은 유럽인은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의 미국의 역할 축소로 이해한다.

 아시아가 지금 세계 경제의 중심에 있다는 미국의 확신에서 비롯한 아시아 중시 정책의 목표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시작부터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중국은 아시아 중시 정책이 순전히 중국의 지정학적인 부상에 맞서고 이를 억제하려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미국이 아시아 중시 정책을 발표(2012년 미 대선 선거전 기간)한 지 몇 주 뒤부터 미국 관료의 중국 때리기가 심해졌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미·필리핀 안보협정을 확대하며 “서필리핀해(해상 영토분쟁이 벌어지는 남중국해를 필리핀에서 부르는 용어)”라는 말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이 해병대를 호주에 파견해 연합훈련을 하는 것을 자국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또 다른 시도로 여겼다. 심지어 미얀마를 개방시키는 일조차 중국은 자원이 풍부한 이 나라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언론에 브리핑했다. 이러한 사건 직후 미 국방부는 서태평양 지역 미군의 재배치를 시작한다고 발표해 중국의 촉각을 곤두세웠다. 중국이 배제된 이 지역의 초대형 다자간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미국의 의도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자극했다.

그러나 중국도 비난받을 여지가 없는 게 아니다.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영토 관련 주장을 하면서 아시아 이웃 나라들을 가혹하게 대했다. 북한에 대해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는 사인을 확대해 정책변화의 신호탄으로 환영받았지만 이 정도로는 한국·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견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마도 중국이 미국의 정책을 다시 바꾸기 위해 뭔가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바마의 재선 이후 아시아 중시 정책은 본래 취지에서 멀어져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다. 아랍·이스라엘 평화협상을 재개시키려는 존 케리 국무장관의 노력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중동에서 실제 갈등을 빚는 문제들은 이스라엘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이는 아랍 세계에서 깊어져 가는 세속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 간의 분열과, 증가하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종파 투쟁과 더욱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은 최소 14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 직후 내전 종식을 위해 러시아와 협력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오바마가 국내 문제로부터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지금이 미국의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를 추구할 계획을 설명할 적절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지속 가능한가. 중동에서 미국의 목표는 무엇인가. 러시아와 협력해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 주요 관심사를 처리하기 위해 대하기 어렵고 비민주적인 국가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지금은 오바마를 시험하는 기간이다. 그의 임기는 아직 3년도 더 남았다. 세계는 기다리며 지켜볼 것이고, 솔직히 (무엇을 할지) 궁금해 할 것이다. ⓒProject Syndicate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교수 전 주한 미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