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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선 중 방사능 최고치 98 ㏃ "1년간 먹어도 X선 한 번 찍은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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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4일 이마트 가양점에서 판매 중인 국내산 삼치·대구를 놓고 휴대용 간이 장비를 이용해 방사능 검사를 했다. 0.76cps(초당 방사능 농도)로 측정됐다. 3cps가 넘어야 오염 의심 수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3일 오후 1시쯤 경기도 분당의 A백화점 식품 매장. 유독 수산물 진열대 앞만 한산했다. 원산지가 일본산(産)으로 표시된 수산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즉석에서 방사능 검사를 해준다는 푯말이 눈길을 끌었다.

 국산 갈치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요구하자 수산물 판매원은 성인 팔뚝만 한 간이 방사능 검사장비로 갈치의 표면을 훑어 내려갔다. 판매원은 “방사능 검사를 원하는 고객이 매일 10명가량 된다”며 “최근 2년간 간이 검사 결과 방사능 오염이 우려돼 폐기 처분된 수산물은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가르치는 50대 이모(여) 교수는 16일 점심때 동료와 함께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해물탕집을 찾았다. 요즘 방사능 오염 우려로 된서리를 맞은 수산물 전문 음식점의 매상을 올려주고 싶어서였다. 동태탕과 대구탕을 주문했다. 종업원은 “방사능 오염 문제가 나오면서 동태·대구를 찾는 사람이 없어 재료를 사다 놓지 않았다”며 “동태탕 전문집에서 동태를 팔지 못하는 기막힌 현실”이라고 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30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인 정모(여)씨는 지난달 대학 식당에서 꽁치와 어묵 볶음이 나오자 점심을 걸렀다. 정 교수는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을 것 같아 먹기 꺼림칙 하다 ”며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는 데 굳이 수산물을 먹을 필요가 있느냐”며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냈다.

 연령·성별·학력에 상관 없이 수산물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방사능 공포 이후 수산물의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 25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방출이 언론에 알려진 지난 8월 중순 이후 국내 수산물 소비는 약 30% 감소했다.

 부산 국제수산물도매시장의 경우 10월 3주간 거래량이 전년 동기에 비해 58%나 줄었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도 이달 들어 국산·수입산 거래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4% 감소했다. 소매시장인 인천 종합어시장도 거래량이 30%가량 떨어진 지 3개월째다. 수은주가 내려가면 수산물의 판매가 증가할 시기인데 오히려 줄어 수산업 관련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해양수산개발원 강종호 수산정책연구실장은 “수산물 소비 하락세가 석 달 동안 전혀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 것은 전례가 없다”며 “생선·해조류·패류는 겨울이 생산·소비철인데 현 상황이 지속되면 수산물 가격 급락 등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해역과 수산물의 방사능 검사 건수를 늘리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 소비자의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검사 건수 너무 적어 무조건 안심 못 해”

① 수거한 국내산 삼치 네 마리에서 식용으로 쓰는 부위 1㎏을 얻고 있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 머리·뼈·내장 부위는 검사에서 제외한다. ② 추출한 부위는 믹서로 잘게 갈아서 검사한다. ③ 방사능 측정을 하는 감마선 검출기. 검사엔 30분가량이 소요된다. ④ 검출된 방사성 물질의 양을 모니터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24일 식품의약품안전처·서울시의 협조를 얻어 시판 중인 국내산 수산물 5종에 대한 방사능 오염 정도를 측정해 봤다.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과 이마트 가양점을 직접 찾았다. 실제 판매되는 생선 위에 휴대용 간이 검사장비를 놓고 방사능 정도를 조사했다. 시장에서 검사한 생선 중 하나를 다시 식약처 연구실로 가져가 정밀검사해 비교해봤다.

 휴대용 검사장비(약 200만~300만원)를 이용한 측정은 식약청 연구실에서 하는 검사보다 정확도는 떨어진다. 휴대용 검사장비로 조사한 결과가 방사능 허용기준보다 높게 나오더라도 이를 근거로 행정 처분을 내릴 순 없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를 감안해 실제 시장에서 휴대용 장비를 동원한 측정이 종종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마트 가양점에서 판매 중인 수산물 5종에 대해 간이 검사를 실시한 결과 우려할 만한 수준의 방사성 물질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중 국내산 삼치 1건에 대해 식약처 연구소에서 정밀검사를 실시했다. 검사는 삼치 약 1㎏을 수거해 뼈·머리 등을 제외하고 먹는 부위만 골라낸 뒤 믹서로 간 이후에 실시된다. 검사에 최소 30분(1800초)이 걸린다. 이 과정을 기자가 지켜봤다. 방사성 세슘은 검출되지 않았다. 간이 검사 결과와 다르지 않았다.

 식약처 서울청 윤혜정 유해물질분석과장은 “방사성 물질 중 멀리 퍼져 나갈 수 있어 수산물 등에서 검출될 우려가 있는 것이 방사선 세슘”이라며 “검사해 보면 대부분 불검출로 나온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반핵운동가인 동국대 의대 김익중(미생물학) 교수는 “(정부의) 방사선 검사 건수가 너무 적어 무조건 안심할 수 없다”며 “설령 낮은 농도의 방사능에 오염돼 있더라도 우리가 이를 감수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려 있다. “(수산물을)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와 “위험하다”(상대적으로 소수)로 양분된다. 전문가 의견은 ‘위험하다’는 쪽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의 불안감까지 낮추지는 못하고 있다.

 강종호 실장은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뒤 수산물에 대한 소비자 불안이 더 높아진 것은 “‘전편’보다 스케일이 떨어지는 ‘속편’에 훨씬 많은 ‘관객’이 몰려 든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유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터졌을 때는 농산물의 방사능 오염에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바람을 타고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에 실려올까봐서다. 하지만 두려움은 금세 잦아들었다.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이재기 교수는 “최근 언론에 잇따라 보도된 후쿠시마 오염수 누출사건이 불안 심리에 기름을 부었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진단했다. 그는 “막연한 방사능 공포심, 원자력에 대한 불신, 악화된 대일(對日) 감정, 기형(畸形) 동식물 사진 유포 등 SNS를 통한 괴담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바다로 흘러 나온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절대량은 2년 전보다 많이 줄었다. 이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당시 바다에 쏟아져 나온 오염수에 비하면 요즘 방출되는 양은 수만∼수십만분의 1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도 2년 전보다 방출량이 크게 줄었다는 데는 동의했다.

 방사능 우려는 일본산에 이어 국산 수산물의 소비까지 위축시켰다. 일본과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잡힌 수산물조차 도매금으로 의혹을 받는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우리 입맛을 자극해온 명태도 방사능 직격탄을 맞은 ‘희생양’ 중 하나다. 부산국제수산물도매시장에서 10월 첫 3주간 명태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87%나 감소했다. 명태는 생태(生太)와 동태(凍太)로 나뉜다. 동태는 우리 원양어선이나 해외업체와 협업하는 합작어선이 러시아 북서부의 베링해 어장에서 주로 잡는다. 국내에서 한 해 유통되는 명태 25만여 t 중 약 2%인 5000여t만 일본산 생태이고 나머지 98%는 동태다. 동태가 주로 잡히는 러시아 해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과 2500∼4000㎞ 이상 떨어져 있다.

세네갈 갈치, 노르웨이 연어 반사이익

 한국인이 가장 많이 섭취하는 고등어·오징어·갈치도 판매도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이달 들어 부산국제수산물도매시장에서 갈치 거래량은 전년 동기보다 98.7% 급감했다.

 강 실장은 “고등어·오징어·갈치·동태가 일본해역에서 잡힌다고 오인하는 소비자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라며 “고등어는 제주도 인근 해역, 오징어는 러시아 쪽에 가까운 해역, 갈치는 우리 연근해에서 주로 잡힌다”고 말했다. 국산 고등어·오징어·갈치에선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바 없다. 수산물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가운데 상대적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지역도 있다. 세네갈 갈치, 노르웨이 연어 등 아프리카·유럽·미국·러시아·중국산 수산물의 선호도가 높아졌다.

 일부 전문가는 방사능 피해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경계한다.

 1 ㏃(베크렐)은 1초당 1개의 방사선이 방출되는 것을 가리킨다. 식약처는 현재 식품 1㎏당 100 ㏃ 이하를 방사능 기준으로 삼고 있다. 100 ㏃이 넘으면 폐기 대상이다. 식약처 박선희 오염물질과장은 “우리 정부가 정한 식품의 방사능 기준(㎏당 100 ㏃)이 국제 기준(코덱스 기준, ㎏당 1000 ㏃)이나 미국·EU 기준보다 엄격하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지금까지 국내에서 검사한 식품의 최고 방사능 측정치는 ㎏당 97.9 ㏃이다. 2011년 7월 13일 냉장 대구에서 검출된 수치였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연안에서 잡힌 대구에선 방사능이 ㎏당 최고 240 ㏃까지 검출됐다.

 우리는 자연 방사선과 인공 방사선을 쬐고 산다. 지구가 탄생할 때부터 존재한 것이 자연 방사선이다. 한국인은 연간 평균 3 m㏜의 자연 방사선을 쬔다. m㏜는 인체에 들어온 방사선 피폭량(被暴量)을 나타내는 단위다.

 인공 방사선은 X선·CT 등 의료용 진단장비와 원전·방사성폐기물·핵실험으로 쬐게 되는 방사선이다. 원자력안전법은 인공 방사선에 의해 일반인이 1년에 받는 방사선 피폭량을 1 m㏜로 제한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인이 매년 섭취하는 모든 생선(평균 약 13㎏)에 방사성 세슘이 ㎏당 370 ㏃(강화되기 전 방사능 관리기준) 오염돼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상해 봤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받게 되는 한 사람이 연간 방사선 피폭량을 계산했다. 0.058 m㏜였다. 0.058 m㏜는 가슴 X선 사진(정면과 측면) 두 장을 찍었을 때 받는 피폭량(0.06 m㏜)과 비슷한 양이다. 만일 현재 기준인 ㎏당 100 ㏃ 오염된 생선(13㎏)을 섭취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피폭량은 가슴 X선 사진 한 장에도 미달할 것이다. 가슴 CT 사진을 한 번 찍었을 때 받는 방사선 피폭량은 8 m㏜에 달한다.

 식약처 이효민 소통협력과장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알기 위해 선택해서 받는 CT 검사와 방사능 수산물의 의한 방사능 피폭을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방사능에 오염된(㎏당 370 ㏃) 수산물(연간 13㎏)을 138년간 먹었을 때 몸에 축적되는 피폭량과 가슴 CT 1회의 피폭량이 같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이상화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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