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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도청해?" 메르켈도 격분 … 오바마 전화통 불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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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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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3일 오전(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국 정보기관이 몇 년에 걸쳐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와 e메일 등을 도청한 의혹이 있다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보도한 직후였다. 잔뜩 화가 난 목소리의 메르켈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만약 그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정보기관의) 관행이라 할지라도 동맹국 간에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의했다고 독일 총리 대변인이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정부는 메르켈 총리의 전화를 엿듣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특히 “미국은 독일과 함께 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있는 걸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24일 오후 존 에머슨 독일 주재 미국 대사를 외무부로 초치해 또 한 차례 강하게 항의했다.

 백악관 기자들은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을 상대로 “과거 메르켈 총리를 상대로 미 정보기관이 도청을 한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카니 대변인은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메르켈 총리는 공개된 행사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장면이 사진기자들에게 포착되는 등 정상들 중에서 유독 휴대전화 애용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전화 도청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틀 전인 21일 오바마 대통령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도 전화통화를 해야 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미 국가안보국(NSA) 전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제공한 비밀문서를 토대로 NSA가 프랑스 정·재계 인사들을 상대로 전화 등을 도청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보도 내용도 구체적이었다. NSA가 2012년 12월 10일부터 2013년 1월 8일 사이에 7000만 건이 넘는 휴대전화 도청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보도 직후 프랑스 정부는 분노했다. 월요일 이른 아침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들여 외교부 장관 비서실장이 직접 항의했다. 장 마르코 애로 프랑스 총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며 “미국 정부는 분명하게 진위를 밝혀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랑드 대통령에게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행위를 자세하게 점검하겠다”며 “동맹국의 신뢰를 해치는 일은 앞으로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켜야 했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이후 이처럼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각국 정상들로부터 동네북 신세가 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도청 파문으로 백악관은 사과성 성명을 연일 발표하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러시아 정부는 도청 의혹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벼르기도 했으며, 멕시코의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NSA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자신의 e메일을 훔쳐봤다는 보도가 나오자 미 정부의 해명을 촉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달 스노든의 폭로로 자신과 브라질 국영기업 등에 대한 미 정부의 도청 의혹이 불거지자 10월로 예정돼 있던 미국 국빈 방문 계획을 아예 취소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스노든 폭로에 삐걱대는 우방
이틀 전 올랑드 이어 항의 통화
오바마 "앞으로 그런 일 없을 것"
백악관 연일 사과 성명 '곤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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