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이 아니었나요? 또 불거진 낙하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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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원하는 사람이 분명 있는 것 같은데, 그 사람이 누구라고 말을 안 해주니….”

 한국도로공사 사장 후보에 대한 재공모가 결정된 23일 국토교통부 관계자의 토로다. 이날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도로공사 사장 후보로 추천된 4명에 대해 모두 불가 판정을 내리고 재공모를 주문했다. 공공기관운영위는 도로공사 같은 공공기관이 사장 후보를 추천하면 이를 심의·의결하는 곳이다. 운영위를 통과한 후보는 국토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의 최종 임명 결정을 받게 되는데, 운영위 단계에서 사장 선임 절차가 백지화된 것이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임명 절차를 다시 밟는 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도 문제고 무엇보다 경영 책임자 자리가 비는 기간이 더 길어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맘에 드는 인물 없었나”

 공기업 기관장 내정설과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로공사는 14일 국토해양부(국토교통부의 옛 이름) 차관급 기관장을 지낸 이재홍(56)·송기섭(57)씨와 최봉환(56) 도로공사 부사장, 백석봉(60) 도로공사 전 부사장을 차기 사장 후보로 추천했다. 이들 모두 정치적 논란과 거리가 먼 인물들이라는 평을 받으면서 도로공사의 수장 공석 사태가 무난히 해결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운영위는 재공모 결정을 내렸다. 공식적인 이유는 ‘후보군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들어가야 하는데 관료와 공기업 출신 두 부류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관가에선 이 결정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4명 안에 대통령 마음에 드는 인물이 없기 때문에 운영위 단계에서 반려한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원하는 사람 말 안 해주니 답답”

 정부 내에선 사실상 사장으로 내정돼 있는 누군가를 도로공사가 찾아내기 전까지는 이 같은 일이 몇 차례 더 반복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어느 누구도 청와대가 원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말을 안 해주니 도로공사 입장에서 답답한 상황이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사장 선임 절차 자체는 공기업 자율 판단에 맡기는 것으로 제도화돼 있는데…”라고도 했다.

그의 말대로 공공기관 사장 자리에 내정자 통보가 전해지지 않는 이유는 공공기관운영법에 공기업·기관의 자율경영이 명문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정부는 공공기관의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자율적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비공식적으로 내정자를 통보하다 물의를 빚은 일도 있었다. 8월 코레일 사장 추천 단계에서 김경욱 국토부 철도국장 등이 일부 임원추천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특정 후보를 거론한 일이 드러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국토부가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을 코레일 사장으로 앉히도록 위원들을 압박한다는 의혹이 퍼졌다.

국토부는 “통상적인 연락만 오고갔을 뿐 특정인을 지원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기재부 운영위는 절차 관련 의혹 일부를 사실로 확인한 뒤 사장 선임 절차를 백지화시켰다. 이 사건 때문에 도로공사 사장 후보 선임에서는 청와대가 특정 인물을 지목하지 않았고 후보 모두에 대해 반려를 결정하는 것으로 그 메시지를 대신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최근 취임한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도 이 같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김 사장은 2009년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있을 때 일어난 ‘용산참사’로 인해 공항공사노동조합과 유가족으로부터 한동안 출근을 저지당했다. 그는 또 새누리당에 들어갔던 경력과 함께 경찰 출신으로 항공 분야 관련 경험이 없다는 점 때문에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낙하산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내부 심사 단계에서 후보 가운데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재공모를 거쳐 취임한 최연혜 코레일 사장도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전 서구을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경력으로 낙하산 논란의 대상이 됐다.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의 대외협력특보로 활동한 김한욱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친박연대 시절 공동대표를 지낸 이규택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역시 낙하산 인사 의혹을 받고 있다.

"원전 비리도 낙하산 탓인데…”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전 비리 등 국민이 직접적 피해 당사자가 된 과거 사건들은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를 공공기관 수장으로 앉힌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정부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공기업의 투명경영을 위해서라도 낙하산 인사는 근절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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