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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신중치 못한 문재인의 대선불복성 발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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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치인의 언어는 신뢰와 일관성과 언행일치를 첫 번째로 친다. 국가 지도자를 자처하면서 상황과 유불리와 편의주의에 따라 말 바꾸기를 거듭한다면 어느 국민이 그를 따르겠는가. 언어의 신뢰를 잃은 정치인은 정치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의 대선불복성 발언은 그 자체의 선동성과 함께 언어의 신뢰 문제를 안고 있다.

 문 의원은 대선에서 지고 난 뒤 “역부족이었다. 패배를 인정한다”(2012년 12월 19일), “당선무효 소송은 바람직하지 않다”(2013년 1월 19일),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4월 11일)라고 했었다. 그러더니 국정원 의혹사건이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와서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순 없고…”(6월 16일)라는 단계를 거쳐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 박 대통령이 수혜자다”(10월 23일)라고 말을 180도 바꾸기에 이르렀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패배 인정→책임 전가→대선 불공정으로 표변한 것이다.

 문 의원의 말 바꾸기는 패자의 변명처럼 들리고 비신사적이며 국민의 기억을 우습게 아는 행위다. 민주주의 선거의 건강함은 상대방을 잡아먹을 듯이 싸움을 하다가도 투표로 결과가 판명나면 패배자가 최종적으로 승복 선언을 함으로써 공동체가 선순환의 길에 접어드는 데 있다.

 문 의원이 대선 불공정의 근거로 제시하는 국정원,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경찰의 조직적 선거 개입도 입증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거나 재판에 넘겨진 상태이므로 사법처리 과정을 지켜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설사 선거 개입이 입증된다 해도 댓글이나 트위터가 여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그게 실제 개별 유권자의 투표행위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는 별개 문제다. 이런 숱한 문제들이 입증된 뒤에야 나올 수 있는 얘기가 ‘대선 불공정, 박근혜 수혜론’이다.

 어떤 특정한 개별행위들이 불법 선거운동일 순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서 이를 이유로 3000만 명이 참여해 새 대통령을 뽑은 선거 전체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문 의원은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지도자답게 언행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