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암 감독 "프로신고 피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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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량이 몇갑절 늘었고요, '꼬리'는 완전히 아래로 말렸습니다. 낮은 포복 상태죠. "

'코트의 제갈공명'이라는 프로농구 모비스 오토몬스의 최희암(48.사진) 감독도 적자생존의 무대에서 '순치(馴致)' 과정을 겪는걸까? 데뷔 시즌이 지나가는 지금, 목소리가 벌써 연세대 감독 시절 만큼 카랑카랑하지 못하다. 1승만 더하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유리한 상황인데도 여유가 없다.

"경기를 마치면 위장이 마른 대추알 같이 오그라져요. 소주 없이는 국물도 들어가질 않죠. "

평소 소주 반병이면 가슴이 벌렁거린다던 최감독이지만 요즘은 자주 속이 쓰릴 만큼 술을 마신다. 시소게임을 하고 나면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온다. "진 다음의 고통이 대학 감독 시절보다 몇갑절 더하다"는 고백이다.

사실 연세대 감독 시절 가끔 프로경기를 보면서 "저 정도로밖에 못하나" 싶어 코웃음친 적도 많았다. 그러나 우승은 고사하고 열팀 중 6등 안에 들기 위해 피를 말리고 보니 "장난이 아니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특히 연세대 제자였던 정덕화(SBS).유재학(SK 빅스) 감독과 6강 티켓을 다투는 기분은 참 묘하다. "솔직히 속이 편치는 않았다"는 최 감독은 "정감독은 아직도 날 괴롭히고 있고, 유감독은 우리가 꼭 이겨야 할 때 한방을 놓더라"며 웃는다.

시즌 초반 고전한 이유를 묻자 "프로를 너무 몰랐다"고 고백했다. "대학 감독 시절에는 왕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지만 프로엔 일방통행이 없더라. 선수와 감독이 소통하는 쌍방향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최 감독은 프로에 있는 동안은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아예 잊기로 했다. 평범해지기로 한걸까?

최감독은 "당초 올시즌 목표가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 다음 시즌엔 정훈.김동우를 주전급으로 키우고, 여기에 어울리는 외국인 선수를 뽑아 기능적인 팀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털어놓았다. 순간 순간 흰자위가 많아지는 날카로운 표정은 최감독이 결코 플레이오프 턱걸이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준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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