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영이 울었다, 좋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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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영(오른쪽)이 20일 인천 스카이 72골프장에서 끝난 LPGA투어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 서희경을 누르고 우승을 확정한 후 다니엘강(가운데)과 얼싸 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최운정(왼쪽)도 다가와 축하하고 있다. 양희영은 2009년 LPGA 투어 풀시드를 획득한 뒤 첫 승을 일궜다. [영종도 AP=뉴시스]

들판의 갈대들이 가을 바람에 휘청거렸다. 연장전 18번 홀(파 5, 500야드) 티잉그라운드에 들어선 양희영(24·KB금융그룹)과 서희경(27·하이트진로)의 마음도 그랬던 것 같다. 하루 종일 페어웨이를 지키던 양희영과 서희경은 각각 오른쪽, 왼쪽으로 티샷을 실수했다.

 서희경이 운이 좋았다. 카트 길에 맞고 거리가 꽤 나갔고 라이도 나쁘지 않았다. 양희영은 페어웨이를 살짝 빗나갔지만 깊은 러프였다. 서희경은 두 번째 샷을 그린에서 100야드 정도 지점의 페어웨이로 보냈다. 양희영은 페어웨이로 나가지 못했다.

 두 선수 모두 우승이 절박했다. 양희영은 유럽 투어와 국내 투어에서 네 번 이겼지만 LPGA 투어에선 우승이 없다. 2009년 LPGA 투어 풀시드를 가진 후 5년이 다 되도록 그랬다. 서희경도 2010년 LPGA 투어 기아 클래식에 초청선수로 우승한 후 챔피언이 되지 못했다. 2011년 US오픈, 2012년 나비스코 챔피언십 등 큰 대회에서 역전패를 여러 번 허용해 ‘비운의 여인’이라는 딱지까지 받은 터였다. 11월 말 결혼을 앞두고 ‘비운’ 딱지를 떼야 했다. 이번이 기회인 것 같았다.

 양희영은 풀 속에 잠겨 있는 공과, 멀찍이 호수 너머에 아른거리는 깃대를 번갈아 보며 여러 번 깊은 한숨을 쉬며 긴장감을 풀려 했다. 물을 건너는 거리는 162야드, 딱 6번 아이언 거리였다. 뒷바람도 불었다. 6번 아이언으로 연습 스윙을 했다. 그러나 날씨가 차가웠다. 온도가 낮으면 거리가 줄어든다. 그는 “큰 게 낫겠다 싶어 5번 아이언을 잡았다”고 했다. 공은 물을 살짝 넘었고 핀 4.5m 옆에 붙었다. 서희경도 세 번째 샷이 그린에 올라갔지만 10m 정도 떨어졌고, 버디 퍼트는 홀을 살짝 빗나갔다.

 양희영이 20일 인천 영종도의 스카이 72골프장 오션코스에서 벌어진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최종 3라운드 3언더파, 합계 9언더파 207타로 연장에 들어가 첫 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 우승했다. 그는 “드디어 우승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고생하신 가족들이 생각났다”며 눈물을 흘렸다.

 LPGA 투어에서 양희영은 ‘끝없는 노력’으로 통하는 선수다. 해가 질 때까지, 상의 등 부분이 햇볕에 바래 누렇게 탈색될 때까지 퍼트 연습을 하곤 해서다. 첫 우승은 5년이나 걸렸지만 결국 노력의 끝에 달콤한 우승컵이 있었다.

영종도=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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