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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배 하고 왔느냐' 생전 가르침 … 해인사 사리탑 주변에 울리는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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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성철 스님(1912~93)

20일 오후 경남 합천 해인사. 성철(1912∼93) 스님 사리탑 주변이 전국 각지에서 온 불자들로 빼곡했다. 24일, 음력으로 9월 20일은 스님이 열반에 든 지 20주기에 맞춰 ‘성철 큰스님 추모 칠일칠야 팔만사천배 참회기도’가 열렸다.

 행사를 주최한 성철 스님 문도회는 이날 참가자가 700명 가량이라고 밝혔다. 17일부터 24일까지 일주일간 전체 참가자는 3000여 명에 이를 전망이다. 전날에는 ‘아비라’ 등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는 불자 500여 명이 다녀갔다.

 이날 기도는 오전 10시 시작했다. 보통 두 시간에 1000배를 할 수 있다. 꼬박 6시간 절을 해야 이날 목표인 3000배를 채울 수 있다.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은 군데군데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선선하고 청명한 가을날이다. 하지만 각자 마음 속에 은밀한 서원(誓願)을 품고 3000배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연신 땀을 흘렸다. 법복이 금세 땀에 젖었다.

성철 스님 20주기를 맞아 해인사 사리탑 주변에서 삼천배하고 있는 불자들. >> 동영상은 joongang.co.kr [사진 백련불교문화재단]

 서울에서 온 김형호(54)씨는 “3000배를 하면 마음자리가 넓어져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고 화를 덜 내게 된다. 그래서 3년째 참가 중”이라고 했다. 울산의 주부 김혜경(43)씨는 “성철 스님 생전에 3000배를 하고 법명을 받았는데, 20년 여 만에 이번엔 고3인 딸의 대학 합격을 빌기 위해 3000배 기도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온 조윤진(53)씨는 “4년째 3000배를 하고 있다. 기도 기운 덕분인지 아이들이 제 앞가림을 잘 하는 것 같고, 나 스스로는 오장육부가 튼튼해지고 얼굴도 맑아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칠일칠야…’는 올해가 20회째다. 1주기부터 시작했다. 성철 스님 상좌인 원택 스님은 “큰스님이 생전 기회 있을 때마다 신심 있는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하셨는데, 뭔가 뜻 깊게 큰스님의 수행 정신을 기리기 위해 ‘칠일칠야…’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팔만사천배는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기도할 경우 하루 1만2000배, 일주일간 계속하면 모두 8만4000배를 하게 된다는 의미다. 실제로는 성철 스님 문도회 7~8개 사찰의 신도들이 일주일 내내 사리탑을 찾아 하루 3000배를 하는 행사로 진행된다.

 성철 스님은 생전 신도들이 찾아오면 3000배를 마쳐야 만나줬다고 한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에게 절하라는 의미였다. 부처님에게 절하면서 만나는 대상은 실은 자기 자신이다. 진리에 눈을 떠 이웃과 사회를 위해 복덕을 쌓으라는 의미였다. 성철 스님 사리탑 주변은 그런 보살 정신의 현장이었다.

해인사(합천)=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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