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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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시정인의 관심은 어느새 서울운동장으로 쏠려있다. 4·27선거 이후, 심신 안정제로는 제격인 것 같다. 정치적으로 말하면 「해열제적 행사」랄까.
첫날 (2일) 경기는 한태전. 태국의 축구는 적어도 우리에겐 악명이 높다. 「와일드·게임」으로 한몫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의 대전에서 이들은 「스마트」한「게임」으로 시종했다. 도리어 축구「팬」들에겐 실망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경기는 여하간 불꽃이 튀어야 구경하는 쪽에서도 열광하게 마련이다.
한국의 축구는 보기 나름이긴 하겠지만 이젠 벽에 이른 느낌이 없지 않다. 「미들· 필드」에서는 기동성도 있고 늑대처럼 힘차게 뛰기도 잘하는 편이다. 「볼」을 낚아채고, 몰고 가는 품이 여간 시원시원하지 않다.
그러나 「페널티·에어리어」로 들어가면 지지부진이다. 우왕좌왕하다 마는 느낌이다. 바로 이번 한태전도 전반전에서 한국은 20개의 득점 「찬스」를 어이없이 놓쳐 버렸다. 이른바 문전처리가 엉성한 것이다.
광활한 초원에서 그 섬세한 작전에 따라 밀물처럼 몰려가는 공세, 여기에 대항하는 수비의 교묘한 방어-. 축구는 바로 이 고전적인 일대회전을 방불케 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데에 환호와 「드릴」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축구는 이런 면에서 보면 수비제일주의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공격은 빈번히 끝장을 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흔히 「유럽」식 축구라고 말하는 양 「윙」의 활약도 관전자의 눈엔 여간 화려하지 않다. 「그라운드」를 가로지르며 「볼」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롱· 슛」, 그래서 「센터링」이 되면 이번엔 맹수처럼 뛰어올라 「헤딩」 …. 장렬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남미식 축구는 농구를 보는 듯한 아기자기함이 있다. 이른바 삼각「패스」라는 것을 보면「콤파스」로 재는 듯 기하학 같기도 하다. 강 「슛」, 「볼」은 엉뚱하게 「골·포스트」에 맞는다. 그러나 어느새 환호성이 터진다. 「볼」은 눈 깜빡할 사이에 반대 방향으로 튀어 「골인」 을 장식한 것이다.
우리나라 축구도 「미들·필드」에서 진일보하는 무슨 계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끈기의 과시나 용맹의 발산이 아니다. 현대의 각종「스포츠」는 그 단계를 넘어 과학적인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문득 선거전이 생각난다. 야당의 장기는 「미들·필드」에서의 그것이라면 여당의 장기는 「페널티·에어리어」에서의 「헤딩」 수법인 것 같다. 어느 쪽이 승리하리라는 것은 너무도 뻔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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