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판에 승패가 가름된 날|4·27 사령탑 주변|7대 대통령 개표 날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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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충무공 탄신 맞아 박 후보 현충사로>
3선이 확실해진 공화당 박정희 대통령 후보는 28일 충무공 탄신 일을 맞아 예년과 같이 부인 육영수 여사와 함께 분향하러 온양 현충사로 떠났다.
박 후보는 이날 새벽 2시까지 청와대 상황실에서 백두진 국무총리·수석 비서관·특별 보좌관들과 개표 상황을 지켜본 뒤 잠자리에 들었다.
박 후보는 27일 밤 11시께 공화당 당사에 들러 개표 상황을 「체크」하고 있는 당원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사령 실에서 김종필 부총재·정일권 상임고문·길재호 사무총장·김성곤 재정위원장 등 당 간부·그리고 백두진 국무총리·김학렬 부총리 등과 같이 약 40분 동안 「코피」를 나누었다.
박 후보는 『신민당은 아직도 자기네가 11만 표 이긴다고 한다기에 우리 집사람보고 보따리 절반쯤 싸놓으라고 얘기했지…』라고 말머리를 끄집어냈는데 오고 간 대화를 옮겨보면-.
▲김 부총재=신민당이 이겼다고 생각하니까 난동을 안 부리는 겁니다.
▲박 후보(마침 들어서는 정 고문에게)=강원도는 어떻든 가요. 꼭 상급학교 입학시험을 치고 기다리는 심정인데….

<「카메라·맨」에게 살진 것처럼 찍어 줘>
▲김 재정위원장=우등생과 낙제생이 함께 시험 친 것입니다.(박 후보는 직통 전화로 장경순 전북도 지부장을 불렀다.)
▲박 후보=목이 많이 쉬었구먼. 수고 많았소. 별 사고 없이 조용하지요.
▲장 위원장=예, 학생들이 많이 참관인으로 내려왔는데 와서보니 조용하다고들 합니다.
▲김 재정위원장=고령에서는 고령 박씨 표가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고령에도 학생들이 많이 내려왔습니다.
▲박 후보=많이 내려갔다니 과거에 김 위원장이 부정 선거한 것 아닙니까
▲박 후보(김용태 충남 지부장도 전화로 불렀다.)=직원들에게 수고 많이 했다고 전하시오. 개표 과정을 깨끗이 하도록 힘써 주시오.
▲박 후보(박준규 서울시 위원장에게)=서울은 이기는지요.
▲박 위원장=어제까지도 이길 것 같았는데 오늘은 모르겠습니다.
▲박 후보(강성원 서울 기획실장을 가리키며)=어떻게 되어가오.
▲강 실장=지금은 1만 표쯤 지고 있지만 이길 것 같습니다.
▲박 후보(「카메라맨」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몰려들자 얼굴을 만지면서)=『살이 좀 찐 것처럼 만들 수 없소? 대통령 그만두고 3개월만 놀면 살 많이 찔 것 같아.』
박 후보는 「스티크」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문경 국민학교 옛 제자들이 선사한 것이라고-.
박 후보는 이어 내무부에 들러 개표 상황을 보고 받은 뒤 자정이 넘어 청와대로 돌아갔다.

<육 여사 충청 표 많아 부통령 조크 받기도>
박 대통령은 온양 관광 「호텔」에서 「칵테일·파티」를 열고 이번 선거에서의 승리를 자축했다. 『이번에는 충청도서도 이겼다』 는 어느 사람의 얘기를 듣고 박 대통령은 『충청도가 고향인 저 사람(육영수 여사를 가리키며) 표가 내 표 보다 더 많은 것 같아…. 부통령이라도 시킬까』라고 「조크」.
박 대통령은 이날 아침 김종필 부총재를 청와대로 불러 1시간 가량 얘기를 한 뒤 함께 온양에 내려왔다.

<김 후보 침대에 누워 라디오에 귀 기울여>
개표의 반을 넘기고 있을 때 김대중 후보는 당사 후보실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상오 2시 반쯤 동교동 자택에서 중앙 당사에 나온 김 후보는 『여러분들이 밤을 새우는데 나도 나와 봐야지요』 라고 침울한 표정.
그는 『눈을 좀 붙여야겠다』 면서 3층 후보실에 올라가 간이 침대에 누워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밤을 새웠고, 아침 8시 부인 이희호 여사가 날라다 준 아침식사를 받은 것 외에는 후보 실 문을 굳게 닫고있었다.

<호남서만 우세하자 김 후보 표정 굳어져>
김 후보는 개표 실황이 발표되기 시작한 27일 밤 10시 반부터 동교동 자택의 별채 거실에서 9「인치」소형 「텔리비젼」을 통해 첫 개표 결과를 지켜보았다.
한복 차림의 김 후보는 11시 반까지 개표 상황을 보며 이따금 「메모」지에 지역별 개표 수를 적기도 했는데 영남지방에서 공화당이 압승하고 야당은 서울·호남 지방에서만 우세를 보이자 표정이 굳어지는 듯 했다.
동교동 김 후보 자택에는 가족과 비서들이 지키고 있을 뿐 당 간부들의 얼굴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27일 아침 투표 후 줄곧 자택에서 휴식하던 김 후보는 하오 2시 반 당사에 나와 대표 위원 실에서 홍익표·정헌주씨 등 당 간부들과 1시간 반 가량 얘기를 나눈 뒤 다시 자택으로 돌아갔었다.

<초반부터의 표 차에 공화당 사 축제 무드>
초반부터의 표 차가 점점 벌어지자 공화당 사는 축제 「무드」.
개표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김종필 부총재와 정일권 고문·김성곤 재정위원장 등은 중앙당사에 들러 상황실을 지휘한 길재호 사무총장·김창근 대변인과 선거 유세에 얽힌 얘기를 나누며 개표 진행을 수시로 「체크」.
김 부총재는 『유세 중 제일 기분 좋았던 것은 부산 유세 때』 라면서 『청중과 호흡이 맞았다』 고 했다. 김재경 위원장이 『부산 유세는 연극 같았다』 고 하자 박준규 당부위원은 『정치란 원래가 「쇼」가 아니냐』고 받았다.

<전기 계산기도 동원 기복 없어 싱겁기도>
개표 상황을 신속히 정리하기 위해 중앙당 제1회의실에 마련된 상황실은 27일 철야 작업을 했다.
상황실의 사면 벽은 개표구별 기록 판으로 둘러져있고 사무국 요원 80여명이 각시·도에 연결된 직통전화, 선관위와의 연락, 「라디오·모니터」 등으로 개표 상황을 시간마다 종합하여 기록했는데 자료 정리를 위해 전기계산기·「타이프라이터」 등도 동원됐다.
개표 초반부터 승리감에 도취되어 환호성을 연발했던 상황실 요원들은 표 차가 기복 없이 일정한 비율로 벌어지자 오히려 싱거운 듯 새벽녘에는 덤덤했다.

<몇 표 차로 이기나 정부·당 간부 내기>
27일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정부와 공화당 간부들은 몇 표 차로 이길 것인가를 놓고 내기를 거는 여유를 보였다.
길재호 사무총장은 1백60만 표, 김창근 대변인은 1백12만 표, 장기영 종로지구당 위원장은 50만 내지 70만, 박경원 내무장관은 1백만 표 안팎에 걸었으며 사무국 부장들은 1백30만에서 1백70만까지 압승을 점쳤다.

<백만 표선 넘게되자 "승리 확신" 밤잠도>
시·도별로 예상 득표를 계산했던 공화당은 서울·제주의 개표 결과를 뜻밖으로 여겼다.
당 조직부는 서울에서 48대 52 정도로 야당에 질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표 차가 훨씬 더 벌어졌으며 62대 38로 우세를 예상했던 제주의 표 차가 줄어들었다.
7대 3으로 예상했던 영남 표는 오히려 표 차가 더 벌어졌고 전북을 5대 5로 본 것도 예상을 뒤엎었다.
그러나 전체의 득표가 예상했던 대로 1백만 표 선을 넘을 조짐이 보이자 길 사무총장은 『승산이 확실해졌으니 잠을 자야겠다』 면서 28일 상오 3시께 집에 돌아갔다.

<끝까지 개표 지켜라 유 당수가 전문 띄워>
유진산 당수는 줄곧 자택에서 개표 상황을 듣다 새벽녘, 끝내 기운 대세가 만회되지 않자 각 지구당 위원장과 개표 참관인들에게 『노고를 치하한다. 지더라도 끝까지 개표를 지켜달라』 는 당수와 선거 사무장 공동명의의 전문을 띄우라고만 지시했다.
유 당수는 아침 10시에야 당사에 나와 대표 위원 실서 김 후보를 비롯한 간부들과 만났다.

<초조한 신민당 간부 "tv 꺼라" 고함도>
개표가 시작되면서 신민당 당사 2층 대표 위원 실에는 홍익표 운영위 부의장·김의택 선거대책 본부차장·정헌주 기획실장·김홍일 김재광 송원영 이태구 신도환 이세규씨 및 김상현 후보 비서실장이 나와 초조한 표정으로 개표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사무직원들은 득표 상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9시40분께 경상도 지방의 첫 개표 결과가 김 후보에게 불리하게 나오자 『TV를 꺼라』 는 고함소리가 나오더니 10시20분께 서울·경기 지방에서 김 후보가 「리드」하자 한때 당사 내에는 가벼운 흥분이 감돌았다.
그러나 계속 박 후보의 우세가 지속되자 대표 위원 실에 있던 당 간부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자정쯤에는 김상현 의원과 방일홍 부대변인 등 2, 3명만이 남아 밤을 새웠고 사무직원들도 투표기록을 중단해버렸다.

<사고 대비 항시 개회 선관위원 바쁜 손길>
중앙선관위는 9명의 위원과 80여 명의 사무 직원 전원이 밤을 새우며 짝수의 시간에 맞추어 두 시간마다 개표 결과를 집계했다.
선관위 소 회의실에 마련된 개표 상황실에서 접수한 개표 중간상황과 각급 선관위에서 보고되는 투 개표 상의 사고 또는 문제점들은 그때그때 정리되어 「항시개회」상태의 위원회에 붙여졌다. 상황실은 관리 반·보고 접수 반· 사고처리반의 3개 반으로 나뉘어 업무를 분담하고 기동성을 위해 11개 시·도 선관위와의 직통전화, 2개의 경비전화, 일반전화 2개를 가설하고 전자계산기 2대, 전동 계산기 1대, 전자 복사기 1대의 장비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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