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의 한국인 현장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구주(9)영국서 재미보는 병아리 감별사【런던=홍사덕 순회 특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국인들은 흔히 특별한 이유도 없이 어떤 특정한 나라나 그 국민을 짝사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학사 광부」란 멋없는 희극을 연출했던 서독의 경우가 그 전형적인 예지만 영국의 교포 현황은 더욱 그 말이 실감나게 한다.
도대체 교민의 수효나 그 구성이 너무나 뜻밖이다. 총 2백50여 명의 교포중 대사관·은행(한은·외환은)·KOTRA의 직원과 가족이 1백50여 명, 「콜롬보」계획 등으로 인해 잠깐 체류하다 가는 뜨내기 교민이 30여 명이어서 정확한 의미의 교포는 불과 70명 안팎이다.
또 이 70명 중 병아리 감별사 12명, 5∼6명 정도의 「샐러리맨」(대사관측 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유학생. 그러니 엄격히 말한다면 이 12명의 병아리 감별사가 지난 25년간의 영국에 뿌리박은 한국인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보잘것없는 진출에도 불구하고 한영 양국이 『모든 면에서 끔찍이 가까운 관계』에 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영국이란 이름은 이상한 마력을 가지고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것이다. 각종 공관의 직원과 가족이 장기 거주 교민의 두 배가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불과 70명을 위해 2명의 영사가 파견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서 「베를린」에는 그 지리적 특수성의 탓도 있지만 교포수가 8백여 명이 넘는데도 『예산이 없어서』(대사관측 말) 영사를 못 보낸다고 했다.
어쨌든 이런 외교 관계의 복잡성을 떠나서 재영 교포의 주류를 이루는 병아리 감별사들의 생활은 지극히 안정되어 있었다. 기자가 찾아간 「노위치」시에는 부부가 함께 감별사인 차학수씨(27), 이일표씨(27), 권영우씨(27) 가족이 앞뒷집에 모여 살고 여기에서 80리쯤 떨어진 「디스」읍에는 김동한씨(42)와 이주백씨(31)가 같은 부화 장에서 일하고있어 재영 한국 감별사들의 중심지 구실을 하고있다.
부부 감별사 차씨와 이웃 권씨의 집은 똑같은 모양의 2층 「아파트」. 두 집 모두 젖먹이를 가져 세 식구가 단란하게 살고 있고 큼직한 집하며 가정 집물들을 봐서 여유 있는 생활임을 알 수 있었다. 월세 32「파운드」(한화 2만5천6백 원), 면 영국에서도 수월찮은 돈이다. 이들의 수입에 비하면 오히려 검소하게 사는 편. 차씨 부부의 지난해 연 수입은 4천5백 「파운드」(3백60만원). 권씨는 혼자서 3천 「파운드」(2백40만원)로서 월2백80 「파운드」(차씨 부부), 내지 2백50 「파운드」이다.
영국의 임금수준으로 따져도 이만한 수입의 직종은 그리 흔하지 않다. 영국 정부 발표에 의하면 작년도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권씨의 32%인 80「파운드」이고 권씨의 2백50 「파운드」수준으로선 「슈퍼마켓」의 「매니저」, 1∼2년 경력의 의사, 대학교수(인세수입 불 포함) 정도이다. 아무리 별난 재주를 갖고 있다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만큼』(차학수씨 말) 좋은 벌이를 하는 셈이다.
애로가 있다면 급료 지불이 능력급제여서, 주로 수출용 병아리를 감별하는 권씨의 경우 1백 마리에 25「펜스」씩 을 받지만, 허용 한도 98%에서 1마리 틀리는데 1마리에 45「펜스」씩 하는 병아리 값을 물어줘야 한다. 1백 마리의 병아리를 평균 4분 안에 감별한다는 것은 고도의 숙달된 기술이 아니곤 흉내도 낼 수 없는 기술이다.
62년 밀양 실업고교를 졸업한 뒤 곧 이 방면에 뛰어 들었다는 권씨는 경력 9년의 「베테랑」이며 부인 이일표씨는 아버지가 서울 오류동에서 유일 농원이란 농장을 경영하는 탓으로 숭의여고 재학시절부터 기술을 익혀 65년엔 한국 최초의 여자 고등 감별사 자격을 얻은 일급 기술자이다. 영국에 있는 한국인 감별사 치고 6년 이하의 경력자는 하나도 없다. 특히 「디스」읍에 사는 김동한씨는 「이탈리아」「캐나다」등 해외근무 경력만 9년째가 되는 노장이다.
차씨는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간별 사들이 깊이 염두에 두어야할 몇 가지 점을 지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2백50 「파운드」의 수입을 올림으로써 4인 가족 생활비 1백20 「파운드」를 제하더라도 매달 10만원 이상의 돈을 저축할 수 있다는 정보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98% 이상의 적중 율과 판상 조건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감별사로「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학을 하겠다고 덤벼드는 사람까지 있다면서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사람일수록 감별 실력도 형편없기가 일수라고 한다. 감별사 양성소에 서너 달 다닌 뒤 우물쭈물 받아낸 자격증을 갖고는 취직이 된다해도 1주일이 못 가서 쫓겨나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도 98% 이상을 맞히는 실력이면 연6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지만 이곳의 2백40만원(3천「파운드」), 에 비하면 25%밖에 안 되는 액수. 물론 영국에서의 생계비가 비싼 점도 고려되어야겠으나 『여하튼 1년에 1백만 원 한 장은 모을 수 있다』는 것이 이곳 감별사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