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를 상속한 독재자 뒤발리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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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1일 심장병으로 사망한 「프랑솨·뒤발리에」 대통령은 14년간이나 「아이티」를 통치해온 전형적인 독재정권의 「심벌」이었다.
57년 9월 미군정 하에 실시된 총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는 85%라는 국민의 문맹률과 낮은 정치의식을 교묘히 이용, 64년 6월에는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하여 종신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정당활동 및 언론의 자유를 억압해 왔다.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렝스」 시의 중류가정에서 태어난 「뒤발리에」는 「저널리스트」이며 교사인 부친의 권유로 의학을 전공, 한때 미국 「미시건」 대학병원에서 2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제2차대전이 끝나 「아이티」로 귀국한 그는 미국공공의료「팀」의 「멤버」가 되어 9년간 「아이티」의 방방곡곡을 순회 진료하면서 그의 정치기반을 닦아왔다.
현재의 부인도 그가 이 의료「팀」에 속해있을 때 같이 근무하던 간호원.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는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64년 종신 대통령제로 헌법개정을 단행하자 내란이 그치지 않아 무자비한 숙청과 국외추방이 가해졌다.
특히 그가 금년 1월 19세 된 그의 아들「장·클로드·뒤발리베」를 그의 후계자로 삼을 것을 발표하자, 그의 딸「마리·데니스·뒤발리에」를 포함한 혈족간의 권력 투쟁으로 정국이 극도로 혼미, 한때 「카리브」 해안에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가족들과 잘 만나지도 않았던 그의 괴벽은 그가 거처하는 궁궐의 촬영마저 보안상 이유로 금지할 정드였고 심지어 식사도 혼자서 해뫘다.
그는 또「22」라는 숫자를 퍽 즐겨 사용했다.
그가 대통령에 춰임한 것이 57년 9월 22일. 종신 대통령이 된 것도 64년 6월 22일. 의회선거마저 67년 1월 22일로 정했는가하면 개표결과 발표도 2월 22일에 행해 그의 일생을 두고 22라는 숫자는 기묘한 인연을 그에게 주었다.
4월 22일을 불과 4시간 앞두고 사망하여 마지막생애의 「22」 기록을 수립하지 못했지만 정부는 사망발표를 22일로 미뤄 그의 넋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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