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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있는 아침]-'스승과 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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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채광석(1948~87) '스승과 제자' 전문

우리 집 네살박이 수왕이는 애비더러 호통을 친다
이노오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안팎 깡패
저보다 두 살 많은 외사촌 현신이한테 엉기며 터지며
싸움이라면 제법 길이 트여
툭하면 이놈 저년 갈겨대기에
시시하게 티격태격 닭싸움질 즐겨서야 되겄느냐
사내란 모름지기 이노오옴!
호기롭게 일갈하는 법이니라
선동한 것은 바로 나였다



아비한테 호통치는 자식이라! 사노라면 그 속내를 알지 못하고 겉만 남은 형식들이 판을 치는 경우가 있다. 보다 근원적인 싸움이 있음을 가르쳤지만 아이는 그 소리와 포즈만 배워 이노오옴 하고 소리친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웃는가? 새 정부가 진정한 싸움 아니 참된 원칙적 사랑을 시작하길 빌면서 안면도 숲속에 시비로 남은 채광석의 싸움과 함박웃음을 떠올린다.

강형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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