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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손병두 전경련 前부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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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959년 가을 무렵이었다. 지난달 20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서 물러난 손병두(62)전경련 고문은 당시 재수생이었다.

가톨릭 의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서였다. 문과로 전공을 바꿔 새로 시험을 치려고 했지만 서울에서 하숙할 돈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느 하숙집 주인으로부터 하숙생 5명을 모아 오면 공짜로 하숙시켜 주겠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을 설득해 하숙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몇달 뒤 서울대 상대에 합격했다.

孫고문의 '성취욕'은 이처럼 대단하다. 쉽게 포기하거나 중도에 물러서지 않는다. 그런 그가 지난달에 갑자기 물러났다. '자의(自意)'라고 극구 강조했다.

"나도 얘기 듣는 곳이 많아요. 쭉 들어보니 필링이 와요. 그래서 손길승 전경련 회장에게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타의(他意)'라는 뉘앙스가 강한 말이었다. 새 정부 때문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얼마 전만 해도 그는 당당하게 "대기업과 재벌 구분론은 비현실적""출자총액제한제와 집단소송제는 문제가 많은 정책" 이라며 새정부를 비판했지만, 며칠새 조심스러워졌다.

孫회장이 '정부와의 협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전경련이 비판기능을 잃어가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과 관련해서도 그는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孫회장이 그럴 것"이라고 했다.

"孫회장과 친구 사이지만, 생각까지 같을 순 없어요. '한 발 후퇴했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없진 않을 거예요. 그러나 기업 스스로 개혁하자거나 사랑받는 기업이 되자는 것은 전경련이 추구해 왔던 방향입니다."

그는 97년 2월에 취임해 지난달 물러났다. 김대중 정부 임기와 비슷하다.

"얼마 전 청와대에 계실 때 뵈었어요. '저도 그만둡니다'라고 하니, 빙그레 웃으시더군요. 정이 많은 분이에요. 기업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시장이 무엇인지도 알아요. 그래서 얘기가 통하는 면이 많았어요. 또 그동안 정부와 충돌을 많이 해 더 정이 든 것 같아요."

전경련 부회장 6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빅딜(대규모 사업 교환)이란다. 아픈 치아를 치료할 시간이 없어 훗날 틀니를 해넣기도 했고, 기자들을 따돌리느라 그룹 회장들을 지하의 주방 엘리베이터를 통해 회의실까지 오도록 했다는 등의 일화들을 얘기했다.

그러나 당시 그는 재계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며 '정부의 대리인'이란 비판도 들었다.

"그땐 빅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과잉설비를 없애는 등 구조조정을 해야 했습니다. 정부가 강제로 언제까지 빅딜을 하라고는 했지만 업종과 지배주주 결정 등 세부적인 것은 대부분 재계 자율에 맡겼어요.

다만 반도체는 자율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아요. 당초 현대전자와 LG반도체는 50%씩 동업하기로 합의했지만, 청와대에서 어느 한쪽으로 몰아줘야 한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어요.

또 우리보고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 의견을 내라고 했어요. 그래서 김우중 당시 전경련 회장에게 상의했더니 한 쪽엔 현대, 다른 쪽엔 LG 주장을 각각 쓴 후 '정부가 판단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라고 쓰라고 하더군요."

오너 회장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배운 것도 많았다고 술회했다.

"고(故) 최종현 SK회장은 대인(大人)이었어요. 암으로 고생하면서도 崔회장은 97년 1월 '경제가 큰일 난다'며 팔엔 링거를 꽂고, 산소호흡기를 달고 청와대를 방문해 김영삼 대통령에게 건의했어요. 그해 12월인가, 金대통령이 '그때 崔회장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하더군요."

김우중 대우 전 회장은 일에 대한 정열이 엄청났다고 기억한다.

"빅딜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던 어느날 金회장과 롯데호텔에서 오전 2시30분에 헤어져 집으로 왔어요.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리더니 대우 회장실로 오래요. 시계를 보니 5시30분이었어요."

그러나 孫고문도 金전회장 못지않은 '워커홀릭'이다. 부회장 시절 그는 조찬 모임이 많아 아침 식사만 2~3번 한 적도 숱하다. 그런 그가 지난달부터 전경련 고문실로 옮겨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일각에선 새 정부 5년간 '좋은 자리'를 맡긴 틀렸다는 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화(禍)를 복(福)으로 바꾸며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지난달 부회장직 사의를 표명한 11일 이후 본지와의 다섯 차례 인터뷰에서도 '또 다른 비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상세한 인터뷰 내용은 (http://joins.com) 참조

글=김영욱.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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