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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스스로 선전전의 도구로 떨어진 국감 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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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 국정감사로 온 나라가 무슨 큰 장이라도 선 듯 한바탕 소란을 겪고 있다. 국감의 주인공은 국회의원들이다. 이들이 하기에 따라 행정부 등 피감기관의 감춰진 나태와 무능이 드러나 적폐를 청산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정치권의 오랜 고질인 분열과 정쟁이 심해져 무엇을 위한 국감이냐라는 회의가 번질 수 있다.

 국감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에게서 개별 헌법기관이라는 자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건 유감이다. 헌법기관의 자의식은 본능적으로 민생과 품격, 개인 독립성과 행정부 견제의 심리일 것이다. 그런데 그제 교육위원회(위원장 신학용)의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유영익) 감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집단적으로 각자 노트북에 “친일·독재 미화하는 교학사 교과서 검정취소”라는 선전 문구를 A4용지에 써 붙이고 나왔다. 교육위의 민주당 의원들은 이런 행동으로 당의 일사불란한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국감장이 특정 정당의 선전장이냐는 불쾌함과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쁜 건 따라 하기 마련인지 이 장면을 본 새누리당 의원들도 30분 만에 똑같은 방식으로 “좌편향 왜곡 교과서 검정 취소”라는 선전문구를 붙였다. 도대체 이런 유치한 선전전을 기획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기만 하다. 또 교육위 의원들은 한참 기싸움 끝에 겨우 회의가 열리자 “이런 사람이 위원장인 기관의 보고를 받을 수 없다” “위원장을 국감장에서 퇴장시켜야 한다”는 무례하고 오만한 언사를 이어갔다.

 무례와 오만은 어제 안전행정위(위원장 김태환)의 경찰청 국감에서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민주당의 어떤 의원은 이성한 경찰청장에게 “아는 게 뭔데 이 자리에 앉아있냐” “그렇게 비겁하게 자리에 연연하고 싶나. 똑바로 답변하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아무리 주장하는 바가 정당하다 해도 직책과 역할을 떠나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향해 이런 식의 모욕과 수치감을 줘도 되는지 국감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오랜 장외투쟁 끝에 열린 국정감사는 나라 전반에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효과도 내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에게 국감의 보람을 느끼게 해 줄 기회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스스로 정쟁과 선전의 도구가 되거나 자기 진영 사람들만 의식한 무례와 오만의 길에서 벗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