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7) 현장 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태국에 태권 코리아 심은 김명수씨|<방콕=이종호 순회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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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밖의 기온은 33도 정도를 오르내려도 방콕 YMCA 태권도 도장은 엄숙하기만 하다.
태극기에 대한 배례가 끝나자 가무잡잡한 얼굴의 태국 청년 1백여명은 찌렁찌렁 도장 안을 울리는 한국말 구령에 따라 수련에 여념이 없다.
피부색만 다르지 않았더라면 한국의 태권 도장 풍경과 다를 바가 없었다.
67년8월부터 이곳 YMCA에 태권도부를 창설한 이래 줄곧 이의 보급에 힘써 오고 있는 김명수씨 (35세·7단)는 이밖에도 미국계 외국인 학교와 미 합동 군사 고문단에도 태권도장을 차리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법과를 졸업한 후 태국에 와서 배출해 낸 제자들은 유단자들이 약 40여명, 유급자는 8백여명에 이른다.
김 사범의 제자 중에는 대학 교수로부터 외교관·사업가·장교 등 다양하고 폭넓다. 태국주재 「유세이드」고문 「굿맨」씨, 「이탈리아」 대사관 영사 등 비록 지위와 나이가 위인 사람이 많더라도 김 사범 앞에서는 깍듯이 예절을 갖추고 순종한다.
그가 오늘의 발판을 이룩하기까지에는 끼니를 거르며 삼복더위 같은 더위 속을 하루에도 몇 시간씩 발붙일 곳을 찾아 헤매야한 고난이 수없이 많았다.
본래 그가 「방콕」에 온 것은 교포 초청에 의한 것이었으나 당초 계약했던 월 3백50 「달러」의 봉급을 거의 받지 못했고 직장도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도장을 개척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찾아간 곳이 YMCA 체육부. 간신히 총무의 허락을 얻어 도장을 차리기는 했으나 학생이 불과 5명에 불과하여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단 한명이 나오더라도 성심껏 꾸준히 지도해 가자 제자들이 자발적으로 광고를 해주고 친구들을 권고하여 불과 1개월만에 제자가 1백명으로 불어났다. 그는 이에 만족치 않고 67년10월 미 외국인 학교에, 69년엔 미 합동 군사 고문단에도 도장을 차렸다. 따라서 지금은 월수입이 1천「달러」를 상회하고, 한창 인기가 높았을 땐 2천 「달러」수준까지 오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숨막히는 더위속에서 하루 세군데의 도장을 연거푸 지도하자면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하오 2시부터 외국인 학교 (60여명)에서 1시간, 하오 3시30분부터 고문단에서 1시간, 하오 6시부터 YMCA에서 1시간씩 지도하자면 자동차를 사서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녀도 시간에 쫓기는 형편.
교습생의 수업료는 월 5「달러」에서 10「달러」. 그러나 교습생 입장에서 보면 도복·도장 사용료 등을 포함해서 월 20「달러」정도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찾아 온다.
그래서 간혹 처음 오는 사람들이 그들의 지위만을 생각하고 사범을 깔보려는 경향도 있으나, 1주일 정도만 수련하면 엄격한 규율에 익숙해져 깍듯이 사범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그는 쓴웃음을 짓는다.
처음 YMCA 도장이 개장되었을때 김 사범은 회비로 징수된 수업료 중 경리 책임자가 지불해 주는 봉급을 받았다.
그런데 그 금액이 태국인 YMCA 관계자와 비교해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경리 책임자가 김 사범으로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급격히 대우가 좋아지더라고.
김씨로부터 태권도를 배운 후 본국으로 돌아간 미국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엽서와 편지를 보내와 토요일·일요일에는 답장 쓰기에 바쁘다고 흐뭇해 한다. 어떤 때는 재정 지원을 하겠다며 돈까지 부쳐오는 사람이 있어 고맙기는 하지만 정신적으로 커다란 부담이 되기도한다고.
현재 태국에는 10개의 태권도 도장이 있다. 「방콕」시에 김 사범이 지도하는 3도장 외에 2개 (태권도 학교,「로열·스포츠·클럽」)이고 「코라트」·「리돈」·「우본」·「우타파오」·「나콘파놈」등 공군 기지에서 7명의 한국인 사범들이 활약하고 있다. 김씨는 이들 사범단의 단장.
공군 기지 도장은 주로 미군을 상대로 하며 교습생도 많아서 「방콕」보다 오히려 수입이 좋은 곳이 많다.
태권도가 소개되기 전 태국에는 일본인이 지도하는 유도가 압도적으로 보급되었으나 지금은 태권도가 유도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서울의 경동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 대학 시절에는 학생 중에서 최고 단자 (5단)였던 김 사범은 지난 2월 성심여자대학을 졸업한 이영자씨와 결혼, 상류급의 고수입으로 한창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다.
김 사범은 매주 금요일 5시부터 1시간은 한국 교포들을 위해 무료로 태권도를 지도해 주고 있다. 그는 한국 자녀에게 가르치는 또 다른 즐거움을 강조하고 특히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최초로 한국 공관을 개설할 때는 우리 외교관의 「보디·가드」역을 한 사실을 커다란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다고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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