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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 긴 안목의 민·형소법을|박승서 <변호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대법원이 민소법과 형소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는 보도이다. 우선 결점과 단점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당국의 열의에 감사하면서 이런 기회에 이 나라에 알맞은, 진실로 훌륭한 소송법전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들리는 말에는 민사 재판의 신속 처리를 위해서 직권주의를 강화하고 단독 사건 상고심을 고등 법원으로 하고 형사 중죄 사건의 상소심 구속 기간 제한을 없애보겠다고 한다니 그러한 의도에는 충분한 이유와 고충이 없지 않다지만 백성의 입장에서 느껴지는 일이 너무나 많다.
동넷집 구멍가게의 외상값, 직공이나 인부의 노임 따위에는 전혀 무력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민사 소송법이 깊숙이 서민 생활 속에 파고들어서 욕질, 주먹질 없이 법에 의한 해결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더욱 급선무가 아닐까? 재산의 가치란 그 갖는 사람에게 항상 상대적인 것이라면 수천·수백만원의 싸움을 잘 해결하는 것이나 몇 천원 짜리 분쟁이 법의 보장을 받는 것이나 비중의 차이는 없다.
고리 채업자가 애지중지하는 본 안전 화해 따위는 어마어마한 사채 이자를 덮어 씌워 갚을 기한이 넘으면 그날로 빚의 몇 배나 되는 자기 집이 빚장이에게 넘어가고 집에서 쫓겨나는 악법도 있다. 그 뿐이랴, 형사 재판에서 수사 기관은 원고 측이고 재판을 받는 사람은 피고인데 원고 측인 경찰이 상대방인 피고를 10일 간이나 긴 기간동안 자기 수중에 가두어놓고 수사 기관이 만든 기록이 재판에서 금과옥조로 쓰여지는 사실상의 서면 심리주의, 꾸러미로 엮어 넘기듯이 넘어가는 무더기 재판,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미결구금이 이미 죗과에 대한 응징적 존재로 군림하는 구 세기적 운용 방식, 이런 것들도 제도적으로 시정, 개선되어야 할 일들이다. 민사 재판에 직권주의 강화가 이상이라지만 후진성 때문에 혹시나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면 큰일이고 단독 사건이라고 해서 법원에 따라 법의 해석이 달라지면 그것도 작은 일이 아니며 더구나 중죄 사건의 구속 기간을 철폐한다면 우리도 옆 나라 모양으로 10수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 선고를 받으라는 말일까? 이왕 나섰으니 당국은 실무 편의적이고 고식적인 현실 미봉 보다는 발전될 앞날을 멀리 내다보는 아량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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