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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도 "소비자는 왕이다"|개막된 24차 공산당대회의 상황과 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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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21년 5월 소련에서는 제10차 공산당 대회를 1주일 앞두고 근로자들이 생필품의 부족과 관료화된 사회중의 정권에 항의하여 파업을 일으켰다.
당시 레닌은 『신 경제 정책』을 채택, 개인 단위의 상거래를 허용하는 등 경제활동의 자유화를 꾀하는 반면에 당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했다.
30일 21차 공산당 대회를 맞이한 소련은 50년 전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노동자들은 생필품 가격의 등귀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으며 공산당 지도부 안에서는 경제정책 실시 효과에 대해 비판이 잇달았다.
현재의 소련 지도자들도 50년 전 레닌이 택했던 방법을 따라 경제 정책면에서 소비자의 불만을 무마하며 당의 지도체제를 타이트하게 죌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징조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눈에 띄고 있다. 이번 대회의 중심과제가 될 제 9차 신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초안은 소비재와 농산물 생산을 중공업 등의 생산재 부분에 비해 우선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소비재 우선 정책은 46∼50년의 전후 혼란기를 제외하고는 처음 있는 일이다.
소비재 생산이 우위를 차지했던 것은 68년 이후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그동안 이 정책의 실시 효과를 두고 지도층 내부에 심각한 알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70년 초에 열렸어야 할 21차 공산당 대회가 1년이나 미루다가 이제 열리게 된 것도 경제 정책을 싸고 지도층의 의견이 엇갈렸던 탓이었다. 소비재 우선의 경제 자유화는 필연적으로 정치체제의 이완을 요구하므로 이러한 위험이 따르지 않는 경제정책의 입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 2월 소련공산당 중앙위 총회가 24차 당 대회에서 승인될 신 경제 계획 초안을 발표할 때에도 이러한 경향을 엿볼 수 있었다. 이때의 발표는 코시긴 수상이 중앙위 총회에서 내용을 보고하여 토론을 거친 다음 발표되어 오던 통례를 깨뜨리고 브레즈네프의 서명만으로 중앙위 총회 결의라는 형식으로 발표됐다.
이때 소련지도층은 지난해12월 폴란드 북부 항구 도시 노동자들의 폭동으로 야기된 사태로 초안을 제대로 손질하지도 못하고 서둘러 발표한 인상을 짙게 하고 있다.
이는 경제계획의 초안에 총 투자 절대액과 부분별로 배분, 농업 총 투자와 주요 공업제품의 품목별 생산예정표가 없는 등 구체적이고도 중요한 수치가 빠져 있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소련 경제의 침체이유는 우선 생산과정의 낙후성과 노동자의 의욕 부족에서 오는 생산효과의 저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소련 경제 부진의 이유가 구태의연한 경제 구조나 제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폴란드의 폭동이 처음에는 경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가 차차로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된 데서 볼 수 잇듯이 체제 전반과 현실의 괴리에 문젯점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련 지도층은 소비재 생산 우선의 경제 계획을 서둘러 발표했던 것이다. 이처럼5개년 계획의 성격이 변하게 된 데는 물론 이러한 대내적인 이유 외에도 대외적인 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서구 대립의 완화와 SALT(전략무기 제한회담)로 과중한 국방비를 다소 소비재 부분에 전용할 여유를 준 듯하다.
그러나 소련 지도층은 소비자의 불만을 무마하는 한편 한층 엄격한 당의 통제를 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62년 이윤제 도입을 주창하여 각 생산 군위에 적용됐던 리베르만 교수의 이론은 최근 리베르만 스스로 『이윤만이 경제 발전의 척도가 아니다.』 그 오류를 인정하고 있다. 물론 리베르만의 이론이 60년부터 공식 채택되어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지만, 이는 당 대회를 앞둔 정치적 압력에 리베르만이 고개를 숙인 것으로 보인다.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스탈린주의의 부활은 소련 지도층의 자유화 물결에 대한 고민을 말해주고 있다. 솔제니친, 사하로프, 메드베데프 등 예술가 과학자들의 자유화 주장이 하부민중에 전파되지 않도록 소련 지도층은 부심해왔다. 이에 대처하는 방안은 필연적으로 정통 레닌주의를 표방하여 당의 통제체재를 가할 수 있는 성격의 체제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당 대회가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그의 반대파들 간의 권력 투쟁의 전장으로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소련의 온갖 중요 사항은 당 대회가 열리기 전에 미리 당 정치국에서 결정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브레즈네프에 대한 비판은 그가 역설하던 농업정책의 실패와 지도층 개편 시도에 대한 것이므로 관측되어왔다. 그러나 이번의 5개년 계획에서 농업정책에 중점이 놓이게 된 것으로 보아 브레즈네프의 지위가 흔들릴 것 같지는 않다.
또 5개년 계획을 통해 종래 브레즈네프로부터 비판받던 코시긴의 컴퓨터에 의한 국가경제의 자동화 등의 주장이 계속 반영된 점으로 미루어 두 수뇌의 타협적인 색채가 엿보인다.<김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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