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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연신 눌러대고, 옥신각신 돈내기 하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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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19면

3일 베이징 파인밸리 골프장에서 열린 LPGA투어 레인우드 클래식 1라운드에서 스테이시 루이스가 관람석 옆에 떨어진 공을 무벌타 드롭하고 있다. [AP]

지난 6일 LPGA 투어 레인우드 클래식 최종 라운드가 열린 중국 베이징의 파인밸리 골프장. 세계 최고 코스로 꼽히는 미국 파인밸리의 이름을 그대로 옮겨다 쓰는 이 골프장에는 스모그가 자욱했다. 일부 선수는 마스크를 쓰고 경기했다. 챔피언조에서 경기하던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마스크 대신 매우 성능 좋은 귀마개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와 경쟁하던 펑산산(중국)을 응원하는 갤러리 때문에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성깔 있는 루이스가 샷을 하려고 어드레스했다가 몇 번이나 멈추고 주위의 갤러리들을 쏘아보는 장면이 여러 차례 화면에 잡혔다.

골프대회 갤러리의 꼴불견 매너

루이스는 경기 막판까지 선두를 유지했다. 그러나 펑산산이 파5인 마지막 홀에서 이글을 하고 루이스는 파에 그치면서 순위가 뒤집혔다. 펑산산에게 운이 따랐다. 두 번째 샷을 친 후 펑산산은 화가 난 듯 클럽으로 땅을 내리쳤다. 그러나 공은 간신히 물을 넘었고, 예상과 달리 러프에서 크게 튀어오르더니 그린으로 굴렀다. 공은 깃대를 맞힌 후 홀 옆 1m 지점에 멈췄다. 갤러리들의 엄청난 환호가 터졌다.

드라마틱한 우승을 이룬 펑산산은 “CCTV 뉴스에서 시진핑 주석 다음에 내가 나왔는데 골프가 CCTV의 메인 뉴스에 나온 건 처음인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루이스도 2등을 한 선수치고는 드물게 화제가 됐다. 루이스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승을 빼앗긴 것 같다. 좋은 샷에 졌다면 상관없지만 (펑산산의 18번 홀 두 번째 샷은) 좋은 샷이 아니었으며 관중의 행동도 짜증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트위터에도 “이번 주 중국 팬들에게 매우 실망했다” “갤러리의 카메라들 때문에, 내가 퍼트를 놓칠 때마다 터지는 박수 소리 때문에 오늘은 골프장에서 즐기기에는 너무나 힘든 날이었다”고 썼다.

루이스의 행동은 비난을받았다. 이길 때만큼 품위 있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골프의 정신이다. 루이스는 트위터 내용을 삭제했고 계정을 폐쇄했다.

그래도 루이스가 갤러리들에게 방해를 받았다는 사실, 반대로 말하면 펑산산이 홈 어드밴티지를 얻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갤러리 중 일부는 루이스의 경기를 일부러 방해하려 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중국에선 골프 관람 문화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골프의 에티켓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상대편 선수가 경기할 때 조용히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농구에서는 상대 선수가 자유투를 할 때 일부러 소리를 지르고 막대기를 흔들면서 방해하는데 골프는 왜 그러지 않는 거냐”라는 질문이 가끔 나온다.

게다가 중국인들의 응원 문화는 유별나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등에서 중국인들이 ‘쟈유(加油)’ 하고 소리칠 때는 체육관이 떠나갈 것처럼 시끄럽다.

홈 어드밴티지에 웃고 홈 텃세에 울고
골프가 처음부터 조용한 스포츠는 아니었다. 19세기 중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인근의 머셀버러와 세인트앤드루스가 골프 메카를 놓고 경쟁할 때다. 머셀버러의 에이스 윌리 파크, 세인트앤드루스 출신 톰 모리스가 파크의 홈인 머셀버러에서 매치플레이를 했다. 일방적으로 윌리 파크를 응원하는 갤러리들이 모리스의 공을 러프로 차버렸다. 4번 홀에서 또다시 한 갤러리가 모리스의 공을 억센 풀 쪽으로 찼다. 톰 모리스는 경기를 그만두고 근처 술집으로 직행했다.

윌리 파크가 세인트앤드루스에서 경기할 때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당시 골프 대결에 내기 돈이 많이 걸렸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지역 출신 선수에게 베팅했기 때문에 홈 어드밴티지는 꽤 컸다. 홈-원정 경기에서 문제가 많아지자 둘은 중립 코스에서 경기를 하기도 했다.

아직도 골프에서 홈 어드밴티지는 남아 있다. 골프 관람 문화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도 그렇다. 지난 3일 미국에서 열린 미국과 국제팀의 골프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에서 타이거 우즈(미국)가 티샷한 공이 깊은 러프 쪽으로 날아갔는데 한 미국 팬이 볼을 피하지 않고 일부러 몸으로 막아냈다. 우즈는 그에게 고맙다고 장갑에 사인을 해줬다. 홈 어드밴티지를 충분히 이용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한양 골프장에서 벌어진 한국오픈에서 한 갤러리가 경사지 러프로 굴러들어간 최경주의 공을 페어웨이로 던져준 적이 있다. 최경주는 외국 선수와 우승 경쟁 중이었다. 당시 조직위는 최경주의 공을 던져준 사람이 국외자라고 판단해 그냥 경기를 진행하게 했다. 만약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경기가 벌어졌다면 다른 룰을 적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2010년 강원도 횡성 오스타 골프장에서는 한국과 중국 협회가 공동 개최하는 KEB 인비테이셔널이 벌어졌는데 여기선 반대로 한국 선수가 당했다. 중국 선수가 애매한 상황에서 구제를 받겠다고 주장했는데 한국 심판들이 인정하지 않았다. 중국 심판들은 중국 선수들에게 한국 선수의 룰 위반을 신고하라고 한 것 같다. 한 중국 선수가 3위로 경기를 마친 김위중 선수가 페어웨이에서만 볼을 닦을 수 있는 프리퍼드 라이 조항을 잘못 알고 러프에 있던 공을 닦았다고 했다. 중국골프협회 간부가 중국 측 경기위원들에게 “김위중을 실격 처리하지 않으면 중국 선수들을 철수시키겠다”고 했다. 결국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김위중은 스코어 오기로 실격됐다. 스코어 카드 제출 이전에 신고했다면 벌타만 받고 끝낼 수 있었는데 보복성 신고였다.

“백스윙·타운스윙 내내 찰칵 찰칵”
한국 갤러리들은 이제 다른 선수가 경기할 때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골프 대회에서 선수가 어드레스했을 때 진행요원이 드는 피켓에는 ‘조용히’라고 적혀 있다. 10일 시작된 최경주 CJ 인비테이셔널의 피켓 내용은 ‘THANK YOU’다. 최경주는 “이 대회를 만들면서 담배도 금지하고 휴대전화도 금지하고 이거저거 팬들에게 부탁을 드렸는데 호응해 주시는 팬들이 고마워 올해는 ‘감사합니다’라고 적게 됐다”고 말했다. 최경주 대회가 다른 대회에 비해 갤러리 수준이 훨씬 높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피켓의 ‘감사합니다’는 부탁한다는 뜻이 더 강해 보인다.

최나연이 지난해 스카이 72 골프장에서 벌어진 LPGA 투어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경기할 때 일이다. 최나연은 “동반 경기자의 공이 벙커에 빠졌다. 근처에 있던 갤러리 두 명이 파를 할 것 같다, 못 할 것 같다 옥신각신하더니 1만원짜리 내기를 하더라.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도 다 들릴 만한 큰 소리였다. 벙커에 빠진 선수가 한국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대충 분위기는 파악하는 것 같았다. 내가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로 창피했다.”

스테이시 루이스도 한 잡지에 한국 갤러리에 대해 얘기했다. “백스윙 때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나면 지장을 받는데 한국에서 경기할 때는 백스윙과 다운스윙 내내 카메라 찰칵 소리가 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몰래카메라 촬영 때문에 사진 찍을 때 찰칵 소리가 의무적으로 난다고 하더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2011년 경기도 이천에서 벌어진 발렌타인 챔피언십에서 한 갤러리는 3라운드 당시 선두를 달리고 있던 호주 선수의 공이 카트길을 따라 굴러오자 발로 막아 공을 반대쪽으로 흘러가게 했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전 세계로 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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