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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면 홈페이지 참조" … 무례한 일본, 뒷짐 진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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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 정부가 보내온 답변서 일부. 인터넷을 참고하라는 내용이다. [사진 민주당 박병석 의원실]

일본산 수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일본 정부의 답변서 내용이 부실한 데다 무성의한 부분이 많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은 24개항에 이르는 한국 정부의 질문서에 대해 지난 8월 28일부터 9월 12일에 걸쳐 답변서를 보내왔다. 하지만 137쪽에 이르는 답변서의 대부분이 질의에 대한 직접 답변이 아닌 참고자료 첨부 형식으로 돼 있고 일본어로 된 인터넷주소(URL)를 대체해 놓은 것도 상당 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어로 된 답변서 원문을 공개한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11일 “원자력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결과, 수산물의 방사능 수치 등 일부 정보를 제외하면 부실하기 짝이 없는 답변”이라며 “137쪽 문건 중 직접 답변은 17쪽이고 나머지는 참조자료로 채워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4개 답변 중 4개는 직접 답변을 찾기 어렵고, 참조자료만 첨부돼 있다”며 “한 줄짜리 URL 답변도 다수”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융해물질의 이동 상황과 이에 따른 실측 데이터’를 요청한 것에 대해 일본은 ‘경제산업성 홈페이지 참고 바람(參照されたい)’이라고 답변하며 일본 정부 URL을 첨부하는 식이다. 이 문건엔 후쿠시마 사고 직후부터 올 7월까지 일본 전역에서 검사한 수산물 중 8%가 방사능 유통기준치 100베크렐(Bq/kg)을 초과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중앙일보 10월 11일자 1면

 이에 대해 전직 외교관 등 전문가들은 “무성의의 극치”라고 입을 모았다. 주일 대사를 지낸 권철현 세종재단 이사장은 “정부 간 질문에는 ‘성의 있는 답변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며 “(정부 간 문서에서) ‘참고 바람’과 같은 답변은 본 기억이 없다. 형식과 표현 모두 무례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외교부에서 동북아 담당 국장을 지낸 전직 외교관은 “체르노빌 사건이 터졌을 때 수천㎞ 떨어진 일본은 러시아에 관련 자료를 요구하고 전 국민에게 마스크를 쓸 것을 권고했다”며 “URL만 보내는 방식의 답변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본지로부터 답변서 내용을 전해들은 김혜정 원자력안전위 위원도 “센다이만 감성돔이 기준치 이상으로 나온 건 방사능 오염이 먹이사슬을 통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도 있는데, 전반적으로 답변이 수준 이하여서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외교부는 “일본 답변이 불성실하다고 볼 수 없다”며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실시간 변하는 원자료를 참고하라는 뜻에서 다양한 URL을 첨부한 것으로 보인다”며 “외교부가 구체적 자료에 대해 평가할 순 없지만 답변을 신속히 보내온 점, 답변의 전체 양 등을 고려할 때 불성실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사안을 다루면서 정부가 미온적·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일본 수산물의 8%가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답변서를 받고도 정부가 이를 국민들에게 신속히 알리지 않았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답변서가 도착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관련부처들이 답변 내용을 공유했는지 ▶후속 대책을 마련했는지도 불투명하다.

 김혜정 위원은 “이 사건을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원안위원인 나도 일본에서 답변이 왔다는 얘기를 못 들었다”며 “도대체 정부의 누가 이 답변과 질문을 컨트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병석 의원은 “이 정도 사안이면 부족한 점은 재질문에 들어갔어야 한다”며 “국민의 안전이 걸린 문제에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강인식·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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