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수술 이야기]⑬ 누가 수술을 받을 것인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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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명근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1992년 11월에 이뤄진 첫 심장 이식 수술은 우선 순위 결정 원칙에 따라 이식을 원하던 세 명의 말기 심근증 환자 중 가장 상태가 나쁜 환자로 결정됐다. 심장 이식을 받은 환자는 잘 회복돼 21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두 환자는 결국 이식수술을 받지 못하고 두 달 내에 모두 사망했다.

2명째 환자가 사망한 날, 나는 어두운 새벽길을 운전해 퇴근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환자 가족들의 침통한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나는 정해진 원칙에 따라 더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를 선정했다. 그 근거는 조금이라도 상태가 나은 환자는 더 기다릴 여유가 있다는 판단이다. 그렇지만 그때 이식을 받지 못한 두 환자는 모두 사망했다. 나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환자를 선정했던 것일까. '우선 순위'라는 것은 결국 의사들의 산술적인 판단에 불과할 뿐, 누구에게 더 기다릴 여유가 있는지 같은 건 지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이식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아 기다림 끝에 속절없이 사망하는 환자를 지켜보면서 나는 환자 선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대부분의 심장질환은 어느 정도 이상 진행되면 계속 악화될 뿐 회복되지 않는다.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면 다른 장기들도 이미 영향을 받아 수술을 통해서도 완전한 건강 회복은 불가능하다. 판막질환을 예로 들면, 어느 정도 이상으로 망가진 경우에는 약으로 치료하면서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손에 난 상처처럼 낫는 것이 아니라, 심장기능이 점점 더 망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심장 수술에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수술 받을 환자를 엄격하게 선정했다. 특히 80, 90년대에만 해도 지금보다 수술 기법이나 위생 상태도 떨어졌기 때문에 수술 자체에 따르는 부작용도 훨씬 더 많았다. 게다가 판막치환술은 수술 후 평생 항응고제를 복용하거나 5~10년 주기로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커다란 부담이 있다. 따라서 최대한 버티다가 더 이상 심장 기능이 버틸 수 없는 경우에만 수술을 했다.

'일찍 치료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치료의 부담이 적어야 한다.'

나는 생각했다. 이식 수술의 경우야 장기 공여자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더라도, 다른 심장병 수술의 경우에는 치료 방법을 발전시켜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월등히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만일 수술 위험이 줄어든다면, 수술이 쉽고 수술 시간이 짧다면, 절개 부위가 작다면, 회복 기간이 짧다면, 평생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면, 재수술을 받는 빈도도 적어진다면, 질환의 말기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장기들이 온전한 상태에서 수술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수술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었다. 쉽고 간단한 치료, 그래서 조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치료. 그게 새로운 수술이 가야할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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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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