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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외환보유액 더 쌓을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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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원화가치가 급락하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즈음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2500억 달러 내외로 세계 6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장안정 조치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은 그해 말 2000억 달러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어려운 상황은 계속 이어져 2009년 3월 원화가치는 달러당 157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자 해외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투기 세력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2000억 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한국 경제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의견을 제시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외환보유액을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법 있었으나 순식간에 외환보유액 2000억 달러는 “있어도 별 소용이 없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적정 외환보유액을 둘러싼 논란은 오래전부터 심심찮게 등장하는 주제지만 속 시원한 해답을 찾기 어렵다. ▶외채 ▶경상거래 규모 ▶증권투자 자금 ▶통화량 등 여러 변수를 조합해 그럴듯한 숫자를 제시하지만 급변하는 국제금융시장 환경에서는 큰 의미가 없어질 때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정한 외환보유액 기준치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한바탕 홍역을 치른 인도(180%), 인도네시아(165%)의 IMF 기준치 대비 외환보유액 비율은 우리나라(130%)보다 더 높다.

 IMF나 일부 전문기관에서 제시하는 적정 외환보유액 규모는 ‘일반적’인 국가를 전제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외환위기 경험이 있는 국가들은 국제금융시장의 파고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나라 외환·주식 분야의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시장도 발달되어 있어서 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다른 나라의 거래를 대신하는 장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는 다른 나라의 취약점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일례로 몇 년 전 세계적으로 개발도상국 주식투자 붐이 일었을 때 글로벌 투자자들이 인프라가 부족한 해당 국가 대신 한국 시장에서 환헤지 관련 투자를 하면서 우리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기도 했다. 다른 나라 경제위기로부터의 전염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현재의 외환보유액 수준이 과연 충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혹자는 3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는 데 따른 비용이 얼마나 큰데 해묵은 외환보유액 확충 타령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미국 국채금리와 국내 통화안정증권(통안채) 또는 국채금리와의 차이가 1%포인트만 되더라도 연간 3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주장한다. 계산상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를 다 인정하더라도 외환보유액 유지 비용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를 당했을 때 우리가 지출해야 하는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외환보유액 유지 비용을 우리나라와 국민의 경제적 안위를 위한, 즉 국방비에 못지않은 필수 비용으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글로벌 금융 환경에서는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투기 세력이 도처에 즐비하다. 이들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외환보유액만큼 유용한 수단을 찾기 어렵다.

 물론 외환보유액 유지 비용 절감 차원에서 미국 등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를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는 일시적 방편에 불과하다. 남의 돈을 빌려 빚을 갚는 것은 근본적 해결 방안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확충한 뒤 또 하나의 안전망으로 통화스와프를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 전략이 아닐까 싶다.

 19개월 연속 경상흑자 기록, 한국 금융시장의 차별화에 따른 대규모 자금유입 등으로 최근 원화 강세 속도가 상대적으로 가파른 편이다. 환율의 과도한 변동성을 억제하고 향후 주요국 출구전략에 따른 자금이탈 가능성에 대비하는 차원에서의 외환보유액 확충은 국제 사회에 제시할 명분도 갖출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방 쌓기는 비 올 때가 아닌 맑은 날에 해야 한다. 자본 유출입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건전성 조치 역시 한국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우세한 이 시기에 미리 해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