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원봉사 '주니어게이트키퍼' 호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주니어게이트키퍼 봉사단원인 박나형(왼쪽)양과 이유경양이 홍순덕(가명)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산시보건소에서 시행 중인 주니어게이트키퍼 사업이 지역주민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사업은 최근 독거노인들이 외로움·질병·생활고 등으로 자살률이 높아지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올해 6월부터 실시했다. 청소년 자원봉사활동과 연계해 노인 자살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다. 현재 100여 명의 중·고생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은 2인 1조가 돼 매월 2회 이상 독거노인 가정에 방문해 그들의 말벗이 돼 주고 있다. 3일 오후 주니어게이트키퍼 봉사현장을 찾았다.

손녀 같은 아이들과 함께하니 행복 느껴

이날 오후 3시. 아산 온양2동에 위치한 홍순덕(80·여·가명)씨 집에서는 주니어게이트키퍼 봉사단원으로 활동중인 박나형(18)양과 이유경(18)양이 함께 홍씨의 ‘말벗’이 돼 주고 있었다.

2년 전 남편을 잃고 혼자 살고 있는 홍씨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손녀 같은 아이들을 앉혀놓고 옛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사연부터 남편을 만나고 어려운 형편에 자식들을 키운 이야기까지 진솔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환한 미소를 얼굴에 머금고 홍씨의 말을 경청했다. 또한 박양과 이양은 홍씨가 얘기하다 입이 마르거나 지친 기색이 보이면 물을 떠다 주거나 손을 잡고 마사지를 해주는 정성을 보였다. 봉사가 끝난 후 간단한 집 청소도 아이들의 몫이다. 홍씨는 그런 아이들을 만류했지만 아이들은 “괜찮아요”하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아이들이 집에 방문할 때면 언제나 즐겁기만 합니다. 저 같은 늙은이에게 웃음으로 대해주는 아이들이 고마울 따름이죠. 손녀딸들이 생긴 것 같아 행복합니다.”

 홍씨는 아산시보건소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됐고 삶의 활력까지 되찾아 행복하다며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아산시보건소에 따르면 평소 홍씨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아왔다. 2년 전 남편을 잃고 독거노인이 되면서부터다.

돌봐주는 사람도 없어 거의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았으며 그 때마다 남편 사진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산시보건소 관계자가 홍씨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가끔 가정을 방문했을 때에도 그는 항상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은 아산시보건소에서 손녀딸 같은 아이들을 소개시켜줘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어요. 눈물을 흘리는 시간도 많이 줄었죠. 아이들이 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설레요. 저처럼 나이가 들면서 외로움을 타는 노인들이 많이 있을 텐데 그들도 이런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네요.”

노인 봉사로 공경과 예의 배우는 아이들

박양과 이양은 평소 노인병원 등에서 봉사활동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아산시보건소에서 올해 6월 주니어게이트키퍼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고 한다.

자원봉사자가 된 후 1회 기본 소양교육을 거쳐 자신이 돌봐야 하는 노인을 소개받은 뒤 현재까지 한번도 빠짐없이 봉사에 매진하고 있다. 비록 주니어게이트키퍼 봉사단원이 된지 얼마 안됐지만 봉사를 하면서 배울 것이 많다고 강조했다.

 박양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노인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숙연함을 느낀다고 했다.

 “저보다 훨씬 어르신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들을 때마다 ‘이 봉사를 시작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봉사시간에는 할머니를 더욱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책임감도 갖게 되죠.”

 이양 역시 주니어게이트키퍼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노인 공경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저도 나형이와 마찬가지로 어르신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 받으면 뿌듯해져요. 평소 노인을 존중하는 것만이 공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봉사를 통해서 노인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공경이라는 생각이 들죠. 앞으로 계속 이 봉사를 할 계획이며 주변 친구들에게도 적극 추천할 예정이에요.”

 아산보건소 관계자는 “주니어게이트키퍼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보면 다들 무언가 하나씩을 깨닫는 것 같고 봉사의 재미도 느끼는듯해 좋은 사업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현재에도 상시 참여자 신청을 받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확대 시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노인 자살 청소년 통해 해결할 수 있어

최근 들어 고령화 시대가 되고 핵가족화 되면서 노인들의 자살률은 해마다 늘고 있다. 특히 아산 지역의 경우 지난해 전체 사망자의 44%가 70세 이상의 노인이었으며 이중 자살로 인한 사망 비율이 42.3%나 됐다. 노년층 주요자살원인으로는 질환 32.6%, 경제적 어려움 30.8%, 갈등·단절 15.6%, 외로움 10.2% 순이었다.

 아산시보건소에서 실시하는 주니어게이트키퍼 사업은 노인들에게 단순히 말벗만 돼 주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까지 해소시켜 주고 나아가 노인들의 건강상태까지 수시로 체크할 수 있기 때문에 노인자살예방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하반기부터 관내 노인 자살률이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약간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산시보건소 관계자는 “이번 사업을 시행한 후 눈에 띄는 수치는 아니지만 지난해보다는 확실히 감소하는 추세에 있는 것은 맞다”며 “이는 주변 노인들에게 조금만 관심을 주면 자살예방에도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사업은 노인들뿐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아산시보건소는 이 사업을 준비하면서 노인자살률 감소에 기여하는 것 이외에 청소년의 올바른 인성과 생명존중 문화확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봉사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생명지킴이 위촉’으로 자신감을 키워주자는 취지도 있었다.

 아산시보건소 관계자는 “이번 사업을 시행해보니 아이들이 하나씩 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며 “평소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아이들이 봉사를 하면서 ‘나보다는 남을 먼저’생각해주는 변화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업은 봉사에 참여하는 학부모들에게도 호응이 좋다”며 “자녀들과 함께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해 봉사를 펼치는 학부모들도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편 아산시보건소는 참여자에게 인증서와 우수 봉사자에게 아산시장표창을 수여할 계획이다.

글·사진=조영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