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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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직 소매도 없는 미완성의 뜨개 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서 스카프에다 액세서리를 총동원해서 장식해본다. 좀 산뜻하게 보이려면 하얀 목걸이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동생도 옆에서 잘 어울린다면서 소매는 달지 말고 블라우스 같은 걸 받쳐입으면 더 어울릴 것 같단다. 엄마한테도 보였다. 엄만 웃기만 하셨지만 그 웃음 속에 대견스럽다는 듯이 보였다. 웬만한 형편에 철 따라 유행 따라 옷을 해 입는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난 계절에 맞추어 색깔도 곱고 다양하게 나오는 고운 털실 중에서 엷은 벽돌 색을 골라 원피스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에 맞춘 미니 원피스가 몸에 맞지 않아 여러 번 고쳐 짜증이 난 일이 생각난다. 한 번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만히 모셔 두어야 하니 이중으로 손해다 뜨개질한 옷은 이렇게 짜증을 내지 않아도 좋고 미디다 맥시로 변하게 하는 요술을 부릴 수도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또 입다 싫증이 나면 다른 형태로도 바꿀 수 있으니 물론 경제적이기도 하다. 거리에 나가보면 다들 패셔·모델 못지 않게 유행에 맞추어 이쁘게들 차리고 다닌다. 가끔 생각해 본다. 어느 정도의 수입이면 저렇게 철 따라 호화롭게 차리고 다닐 수 있을까. 아마 여인들의 옷차림에서도 사회의 부정부패와 연관성이나 있지 않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번에 나의 오버코트를 본 친구들은 『월남에나 보내자』 『월남엔 이런 옷이 필요 없다더라』는 등으로 농담을 해서 우린 한바탕 웃은 일이 있다. 친구들은 또 나의 뜨개 원피스를 보면 『구태 시집은 가지 말고 뜨개질만 하고 있어라』고 핀잔을 줄 것만 같다. 난 이런 생각들을 하며 한코 한코 바늘을 움직이고 있다. 완전한 형태로 완성되었을 때의 기쁨도 상상하며…서명자 <부산시 부산진구 당감동428번지 서갑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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