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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남매 20년만의 대화|서울의 한필성씨, 한필화와 단장의 국제전화 35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동경=조동오특파원】18일자 아사히신문은 조간 사회면에서 『북괴 빙상선수 한필화는 한국에 살고있는 한필성씨의 동생으로 밝혀졌다』고 크게 보도했다. 이날 아사히신문은 17일하오 3시55분부터 4시30분까지 35분 동안 아사히신문 동경본사 국제전화실과 아사히신문 서울지사를 연결, 한필성씨와 한필화가 국제전화로 대화를 나누도록 주선했으며 이 통화에서 한필화는 필성씨를 목멘 소리로 『오빠, 오빠』라고 불렀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국제전화의 수화기를 든 한필화는 필성씨에게 『필성 오빠』라고 목멘 소리로 부르고 부모와 친척의 이름을 대고 이야기를 나누어 남매임을 확인했으며 목이 메어 통화가 여러 번 중단되었다고 보도했다. 20년만에 목소리로 만난 두 남매는 72년 동계 올림픽 때 꼭 삽보로에서 만나보자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이날 두 남매가 20년만에 통화한 시간은 35분이지만 서로 흐느끼느라고 실제 통화시간은 10분밖에 안됐다.
이날 두 남매의 20년만에 나눈 대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사히신문 서울지사=한필화 나오시오.
▲필화=여보세요, 누구십니까?
▲필성=여보세요 여보세요, 한필성입니다.(한씨는 가슴이 떨린다면서 선뜻 오빠라고 말못했다.)
▲필화=오빠! 오빠! 죽은 줄 알고 있었는데 필성 오빠군요.
▲필성=필화야, 필화야, 나 석선이다.(석선이는 필성씨의 아명)
▲필화=오빠는 아버지나 제 생각을 잊지 않고 있었군요.
▲필성=나는 잘살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연세는 어떻게 됐나?
▲필화=아버지는 78살, 어머니는 67살로 모두 살아 계셔요. 가막소(교도소)뒤 옛날 살던 집에서 살고 있어요. 큰언니(필희)는 태송에서 살고있고 작은언니(필녀)는 갈촌에서 살고있어요. 오빠! 오빠사진을 보니 많이 늙은 것 같아요.
▲필성=벌써 그렇게 되셨나. 건강하시다니 다행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나이 차이가 10살 아니냐?
▲필화=11살 차예요.
▲필성=다행이다. 동생 필환이는 살아있느냐?
▲필화=살아있어요.(흐느끼기 시작했다.)
▲필성=그럼 필환이 이야기는 일본서 기자회견 때 왜 안 했느냐?
▲필화=여자형제 이야기만 물어봐서 작은 오빠이야기는 안 했어요.
▲필성=필옥이는 뭘 하느냐?
▲필화=시집가서 살고 있어요.(한씨는 이때 자기동생임을 확인했다는 듯이 큰소리로 내 동생이 틀림없다고 책상을 쳤다.)
▲필성=너는 시집가서 애 낳았다지? 나는 서울에서 TV수리상을 하며 넉넉하게 살고 있다. 울지 말아.
▲필화=남편은 체육선생인데 내년 경기를 마치고 애를 낳겠어요. 오빠의 부인이나 조카들은 어떻게 지내요.
▲필성=나는 처음 한계화씨 때문에 네가 내 동생이 아닌 줄 알았다. 또 네가 4남매밖에 없다고 처음에 말했기 때문에 주춤하다가 너를 만나지 못하게 됐다. 나는 21살 때 결혼, 지금 5남매를 두고있는데 큰딸 애자가 쌍꺼풀이 있고 꼭 너를 닮았다. 너의 뒤를 이어 애자에게 스케이팅을 가르치겠다.
신문에 네 얼굴이 살짝 곰보라는 글을 읽고 네가 홍역에 걸렸을 때 내가 딱지를 떼지 말라 했던 일이 생각났다.
▲필성=마태네 집은?(마태는 필성씨 어릴 때 친구)
마태는 나하고 같이 나와 지금 남대문시장서 장사하며 늘 만난다.
▲필화=마태 동생은 진남포에서 살고 있고 형은 사변 후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필성=「쇳비리」 큰아버지 집은? (쇳비리는 평남 강서군 동진면 덕봉리)
▲필화=조카들도 잘 자라고 있어요.
▲필성=잘 자라고 있다고 거짓말하지 말아. 내가 그쪽 사정을 모르는 줄 아느냐. 지금 누가 널 감시하고 있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말아라.
▲필화=오빠, 내년 경기할 때 우리 꼭 만나요. 오빠가 일본에 올 수도 있지 않아요.
▲필성=그래그래, 내년에 만나 스케이트 타고 놀자.
▲필화=1년 동안 몸 건강히 지내셔요.
▲필성=너도 몸 건강해라. 하느님께 기도하겠다.
▲필화=기도가 뭐예요?
▲필성=어릴 때 우리 집 옆에 교회가 있었잖니?
▲필화=내년에 만날 때 가족사진을 보여드리겠어요. 오빠가 죽은 줄 알았는데, 돌아가면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이야기하겠어요. 내년에 만나요.
한편 국제전화를 통해 동생 필화와 35분 동안 20년만에 말을 나눈 필성씨는 『핏줄은 속일 수 없습니다.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그 애가 내 동생임이 틀림없어요』라고 눈물을 흘렸다‥. 필성씨는 『부모가 살아 계신다니 다행이지만 북괴가 얼마나 못살게 굴었겠느냐』면서 철의 장막 속에서 신음하는 육친을 걱정했다.

<한필성씨 금명간 도일 설>
【동경=조동오특파원】북괴빙상선수 한필화가 아사히신문의 주선으로 한국에 있는 오빠 한필성씨를 찾았으며 17일하오 국제전화로 통화한데 이어 동경에서는 북괴선수단이 귀국하기 전에 한국에 있는 한필성씨가 동경에 와서 동생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이 나돌고있다.
매스컴에서는 북괴선수단이 오는 20일 동경을 떠날 예정으로 있어 그전에 한씨가 일본을 방문하면 20년만에 혈육이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보고 있다.

<네 자매뿐 주장 번복>한필화에 의문점
한필성씨와 한필화가 일본 아사히신문 주선 국제전화를 통해 남매임을 확인했으나 아직도 석연치 않은 점이 남아있다.
처음 한계화씨가 『내 동생 같다』고 주장했을 때 한필화는 자기 가족 중에는 『월남한 사람이 없다』고 부인했으며 형제도 4자매뿐이라고 주장했었다.
또한 한필성씨는 북한에 있는 형제는 2남4녀의 6남매라고 말했으나 손위 누님의 이름을 대지 못하고 다만 필환·필옥·필화의 이름만 댔으며 그 뒤 한필화의 주장에 따라 필희·필녀의 이름을 댔으며 필성씨의 주장으로 하면 필화의 나이가 31세가 되어야하는데 27세로 되어있는 점등이 석연치 않다.
또한 『대한민국에는 혈육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해온 한필화가 지난 15일 갑자기 필성씨를 만나지도 않은채 『오빠 같다』고 말한 뒤 이날 국제전화에서 즉각 『오빠』라고 외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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