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의 세상탐사] 기초연금의 오해와 진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3호 31면

정부가 기초연금을 만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주겠다던 당초 공약과 달리 소득 하위 70%에게만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온갖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두 차례나 사과하고, 정부·여당이 여러 차례 설명과 해명을 거듭해도 많은 국민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다. 민주당은 ‘공약 먹튀’라며 정부가 내놓은 기초연금 수정안을 백지화하겠다고 벼른다. 현재 상태라면 기초연금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은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순조롭게 풀릴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민주당이 놓치는 대목이 있다. 민주당이 끝까지 반대하면 여당 단독으로 수정안을 관철시킬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야당 주장대로 갈 수도 없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기초연금제는 내년 7월 시행하는 게 불가능해지고 아무도 기초연금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 기초연금을 도입하려면 현행 기초노령연급법을 대체하는 입법을 해야 하는데 아무런 입법조치가 없다면 지금처럼 기초노령연금만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기초연금 논란은 두 가지 다른 차원의 논점이 뒤섞여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하나는 대통령의 공약 파기 여부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다. 다른 하나는 기초연금 수정안이 과연 실현 가능성과 형평성 면에서 타당하느냐다. 여야가 무작정 언성만 높일 게 아니라 이 두 가지 논점을 나눠 차분히 따져보면 타협과 절충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공약 파기’라는 민주당의 정치공세다. 당장은 일부 노인층의 반발을 등에 업고 말발이 통할지 모르지만 제1 야당이 오래 끌고 가기엔 멋쩍은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약은 민주당의 공약이 아니라 여당 후보가 선거과정에서 국민에게 내놓은 공약이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이나 공약을 곧이곧대로 지키지 못한 점을 국민에게 사과할 일이지, 민주당에 사과할 사안이 아닌 것이다. 여당 지지층 사이에서 지키지 못할 공약을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터에 민주당의 ‘공약 파기’ 주장은 흡사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목소리를 높이는 모양새다. 공약 파기 여부에 대한 판단은 당사자인 노인층이나 정치 평론가의 몫이다. 더구나 박근혜정부의 수정안은 민주당이 내놨던 공약에 근접한 것이다. 지난해 대선 당시엔 서로 노인층의 환심을 사려고 노인연금 확대 경쟁을 하다가 이제 와서 자신들의 공약과 비슷해졌다고 ‘대국민 사기극’ 운운하는 것은 아무래도 민망해 보인다. “지난해 대선 때 우리 공약은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에 효력을 잃었다”는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의 주장은 그 자체로 궤변에 가깝거니와 스스로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기초연금 수정안의 현실적 타당성만을 놓고 보면 여야 간 타협의 여지는 커 보인다. 수정안에선 일단 지급대상을 축소함으로써 재원부족·재정부담 문제를 풀고 기초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높였다. 이런 점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과거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에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지급대상을 늘리자는 정치공세를 펼쳤다. 이에 집권 세력은 재정 형편상 지급대상을 줄이자고 맞섰다. 기초연금 지급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할지, 아니면 민주당 공약대로 80%로 할지는 얼마든지 절충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남는 문제는 차등지급 기준을 국민연금 가입기간으로 하느냐, 아니면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주장처럼 소득인정액으로 할 것이냐다. 학계에서는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어 결국은 선택의 문제라고 한다. 정부는 국민행복연금위원회가 제시한 두 가지 안 가운데 집행의 효율성과 운용의 편의성을 감안해 전자를 택했다. 이 문제 또한 민주당이 기초연금을 지속 가능한 노인복지제도로 정착시킨다는 대전제에 동의한다면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볼 만한 일이다. 정부·여당도 굳이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한다는 또 다른 공약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사실 기초연금 논란의 불씨는 2008년 정치권이 충분한 고민 없이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했을 때 시작됐다. 처음부터 노인 빈곤을 해소한다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진 채 노인들에게 공돈을 나눠준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준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다가 지난해 대선 때 경쟁적으로 지급 금액과 대상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가 뒷감당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 세상에 줬다가 뺏는 것처럼 야속한 일이 없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기초연금 자체를 되돌릴 길은 없다. 여야 할 것 없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공동책임을 통감할 때다. 거기서부터 기초연금 논란은 수습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