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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동, 그 넓은 빈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3호 31면

얼마 전 서울 인사동에서 집이 있는 체부동까지 걸어갔다. 안국동 오거리 넓은 빈터 뒤에 인왕산의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초가을 날씨의 그날 오후 인왕산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경복궁 쪽으로 걷다가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의 긴 담 옆을 지났다. 몇 년 전까지 최고급 한옥 호텔을 짓겠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무산된 것 같다. 경복궁 바로 옆의 이 황금의 땅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생각해봤다.

복잡한 대도시 속 빈터가 특별한 보호 대상이 아닐 경우 건물이 들어온다는 건 ‘도시학’의 기본 원칙 중 하나다. 다만 공익(公益)을 위해 정부가 땅을 매입해 빈터를 공원으로 조성하면 새 건물은 들어서지 않을 것이다. 사립 문화단체 또는 민간기업이 건물이 없는 공공 공간으로 빈터를 남길 수는 있지만 그런 사례는 찾기 어렵다.

도시사(史) 속에서 공원은 비교적 새로운 공간이다. 공원은 말 그대로 ‘공공 정원’인데, 19세기 초부터 영국·미국 도시에서 시작해 19세기 후반 공업화 및 제국주의 확산 덕에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공간이 됐다. 공원은 집이라는 사적인 생활 공간과 직장이라는 공적 공간 사이에 있는 ‘제3의 공간’이다. 공적 공간이면서도 가족 산책, 지인과의 대화 등 사적인 활동을 위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공원(公園)’에 ‘공(公)’의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공원은 필요 없는 공간이 돼버린다. ‘공’은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 중 하나다. 공동체의 주권은 ‘민(民)’에 있고, ‘민’은 투표라는 공적 행위를 통해 뜻을 표명함으로써 공동체를 주도한다. 즉 ‘민’이 뜻을 표하면 ‘공’이 되는 셈이다. ‘공’이 없는 사회는 ‘민’이 자신의 뜻을 표할 수 없는 사회이거나, 뜻을 표하더라도 공동체 주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회이다. 독재자들이 공원 아닌 광장을 지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빈터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은 공익을 확대한다는 개념이 뚜렷하다. 아름다운 경관이나 역사성, 접근성 등 여러 측면이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사적 목적이 아닌 ‘공’을 위한 공간 활용이다.

전 세계 대도시 중 가장 유명한 공원은 뉴욕의 센트럴파크일 것이다. 19세기 초 뉴욕이 급성장하면서 맨해튼 북부 도시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시민에게 접근성이 뛰어난 공원을 만든 것이다. 인접 지역 개발이 계속됨에 따라 센트럴파크는 이제 강력한 상징성 및 역사성을 갖게 됐다. 뉴욕시가 1970년대 재정 위기를 겪을 때에도 센트럴파크를 매각하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은 건 공익에 대한 공감이 넓고 깊기 때문이다.

그럼 경복궁 옆 이 황금의 땅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현재 대한항공이 소유하고 있고 7성급 호텔을 지을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로 옆에 중·고교 3곳이 있어서 법적으로 숙박시설을 지을 수 없다고 한다. 소유주는 이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관련 당국에 요청한 상태다. 법적 논란은 그렇다고 치고 큰 그림으로 볼 때 ‘이렇게 아름답고 역사성도 깊고 접근성도 좋은 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공’을 위해 사용할 건지, 아니면 사유재산으로 놔둘 것인지가 문제다.

공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이 땅은, 외국인 눈으로 봐도 공익을 위한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뭘 짓겠다면 현재 경복궁의 경관을 해치는 민속박물관을 이곳으로 옮겨 바로 옆에 건립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연계해 멋진 박물관 벨트를 만들 수도 있다. 이 땅을 공익을 위해 활용하려면 중앙정부든 서울시든 정부가 매입해야 한다. 한국은 ‘민’에 주권이 있는 민주주의 국가인 만큼 정부가 ‘공’을 위해 예산을 쓸 명분도 갖고 있다. 하루빨리 구체적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다.



로버트 파우저 미국 미시간대에서 동양어문학 학사, 언어학 석사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에서 언어학 박사를 했다. 일본 교토대를 거쳐 서울대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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