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뛴 '북극항로' 눈독 … 푸틴, 군기지 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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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극해에 대한 지배권 확대를 위해 군사기지를 재건 중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당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극 지역은 러시아 경제와 안보에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러시아군이 북극해 요충지에 있던 옛 소련의 군사기지를 재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건설 중인 기지는 북극해 동부의 노보시비르스키 제도에 위치해 있다. 핵추진 순양함 ‘표트르대제’함이 이끄는 10척의 러시아 해군 함대는 해상훈련 명목으로 지난달 12일 이곳에 도착, 영구 주둔지 건설을 시작했다. 곧 비행장을 비롯한 군사시설들이 제 모습을 갖출 예정이다. 노보시비르스키 제도는 소련 시절 북방함대 기지가 주둔했으나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폐쇄된 곳이다.

 푸틴은 재건 중인 기지가 “유럽과 태평양 지역을 잇는 북극해 항로를 보호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북극해 항로를 지나다니는 선박이 늘어남에 따라 밀수와 불법 이민자 상륙을 막기 위해서라도 해상 경계 활동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러시아 당국은 지난달 북극해 해저 유전 개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국제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 소속 회원들을 체포, ‘해적’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북극해 항로는 지구온난화로 빙산이 녹으며 선박 운항이 가능해졌다. 2009년 46척의 민간 선박이 처음으로 이곳을 지나간 이래 올해엔 400척가량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은 “북극 지역은 수세기 동안 러시아의 주권 아래 있었던, 러시아 연방과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2001년 극지를 가로지르는 2000㎞ 길이의 해저산맥인 로모노소프 해령(海嶺)이 자신들 영토의 연장이라는 주장을 유엔에 제기했다가 증거 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2007년엔 이곳에 심해 잠수정을 보내 수심 4302m 지점에 티타늄으로 만든 러시아 국기를 꽂고 자국 영토임을 선언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북극해엔 지구상 미개발 석유·천연가스의 4분의 1이 매장돼 있을 뿐 아니라 향후 수에즈 운하에 비견될 해운 요충지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로테르담(네덜란드)을 기준으로 했을 때 북극 항로 이용 거리는 1만2700㎞, 수에즈 운하 통과 때보다 7400㎞ 줄어든다. 러시아가 이 항로를 자신의 관할 아래 둔다면 과거 수에즈 운하와 지브롤터 해협을 지배한 영국, 파나마 운하를 장악했던 미국처럼 국가 중흥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푸틴은 ‘북극이 국제사회의 관할하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국제조약에 따라 각국이 평화롭게 연구개발 중인 남극과 달리 북극은 러시아를 비롯, 미국·캐나다·덴마크·노르웨이 등이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94년 유엔 해양법협약으로 인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인정키로 했지만 경계 획정을 두고 각국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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