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불교 음악 범패|동국대서 재창조 위한 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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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불교 재단이 운영하는 동국대는 지난 29일 불교 음악 즉 범패의 보존과 재창조에 대한 토론의 자리를 처음으로 마련했다. 근래 비구승단의 장악으로 이 방면의 연구 활동을 전혀 보이지 않던 동대가 비록 관계 학자들만이라도 초대해 토의를 가졌다는 것은 불교계에 새롭고 희망적인 움직임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모임의 참석자는 주제 발표에 한만영씨 (서울대)를 비롯하여 30여명의 교수가 참가, 광범한 의견 교환을 가졌다.
이 토론에서 동대 김기동 교수는 범패를 할 줄 아는 생존 승려 4명을 무형 문화재로 지정할 것과 대학에 불교 음악 강좌는 물론 합창단의 설치를 제의했다.
나아가 홍정식 교수는 불교 음악과의 설치를 주장하면서 제를 간소화하는 것도 좋지만 범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역설해 주목을 끌었다. 주제 발표자 한 교수는 연구한 바를 발표하면서 이제까지 통합 종단 측이 도외시하던 4명의 승려를 소개했다. 즉 송암·덕암 등 범패의 손꼽히는 예능 보유자는 현재 태고종 소속의 승려들이다. 만약 동대가 불교 음악 교육을 실시하려면 이들 승려의 초빙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한만영씨는 한국에서 범패의 발생 연대를 8∼9세기로 잡았는데 이것은 서양의 「그레고리안」성가와 같은 연대라고 말했다.
그는 서양 음악의 주류를 이루는 근원이 「그레고리안」성경에 있듯이 범패도 한국 고전 음악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범패는 절에서 제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이며 가곡이나 판소리와 함께 우리 나라의 삼대성 악곡중 하나인데 주로 산간에서만 불리어 민간에는 별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한씨는 범패의 종류에는 ①안채비 (제를 올리는 절안의 유식한 승법 또는 법주가 하는 것으로 유치 청사 같은 축원문을 요령을 흔들며 낭독한다) ②바깥 채비 (범패를 전업으로 하는 승려가 다른 절에 초청을 받고 가서 하는 노래)가 있고 범패라면 주로 이 바깥 채비를 말하는 것을 홋 소리와 짓 소리가 주가 된다고 설명했다.
범패에 관한 문헌은 현존하는 것이 거의 없으며 겨우 동음집이 있긴 하지만 이것도 구체적인 고저와 장단을 알 수 있는 악보가 아니어서 그 음악 자체를 전수하기는 힘든 형편이다.
고려와 이조시대에는 범패가 상당히 성행했으나 오늘날에는 모든 의식을 간략하게 하는 경향이 짙어 며칠씩 걸리는 제가 몇 10분으로 단축됨에 따라 범패는 점차 인멸 단계에 있다. 대개 안채 소리로만 제를 집행하는 일이 많아졌다.
한 교수는 「범패를 좀 부를 줄 아는 스님들은 모두 고령이어서 범패의 보존 문제가 크게 문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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