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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외교 그 형성 과정 속의 역관계 (1)|국무성의 약화|뉴요크·타임스 지=「테렌스·스미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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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닉슨 미 대통령은 재임 2년 동안 주로 외교 면에서 활발한 노력을 전개했다. 2년이 지나는 동안 외교 면에 나타난 「닉슨·스타일」또한 뚜렷해졌다. 「뉴요크·타임스」는 닉슨 외교의 형성 과정에서 작용하는 모든 요인과 기구 면의 조직을 초점으로 해서 닉슨 외교를 면밀히 검토하는 다섯 차례의 시리즈를 실었다. 여기 그 시리즈를 소개한다.
「프랭클린·루스벨트」대통령이 외교 정책 수립의 주역이 국무성에서 백악관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뚜렷해 졌다. 그와 같은 경향은 핵무기 시대의 복잡해진 국제 관계와 핵전쟁의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는 정책 결정이 수시로 이뤄지는 새로운 시대에 의해 특징 지어진 것이다.
덜레스와 애치슨 국무장관 등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트루먼 아이젠하워 행정부에 이런 경향이 약간 누그러지는 듯 했으나 닉슨이 대통령으로 들어 앉은 후로 외교 문제에 미치는 백악관의 입김은 결정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드골 조전까지 백악관서>
닉슨 행정부의 외교 지침이 되고 있는 「닉슨·독트린」에서부터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의 서거에 보낸 조전에 이르기까지 국무성이 아니라 백악관에서 초고를 준비했다는 건 그걸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외교 정책상의 주도권이 백악관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왕왕 국무성 측이 억울하게 손해보는 경우가 있다. 70년 초 닉슨 대통령이 발표한 세계 정세 보고서가, 그 좋은 예이다.
이 새로운 아이디어는 처음 상원 외교위의 건의로 국무성 쪽에서 채택한 것이었다. 로저즈 국무장관은 69년 말에 이 보고서를 발표할 생각으로 각 지역 국장들로부터 자료를 모았다. 그러나 보고서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백악관의 한 보좌관이 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아이디어를 채가서 닉슨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 기막힌 PR의 기회를 잡도록 만들어버렸다.
70년2월 이 보고서가 완성되어 백악관에서 서명식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 외교 담당 보좌관인 「헨리·키신저」를 위시한 백악관 직원들만 참석했을 뿐 국무성에서는 단 한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 한 국무성관리는 말했다. 『그때 우리는 사기 당한 기분이였다』고.
국무성의 발언권이 줄어짐에 따라 국방성 중앙 정보국 (CIA)등 방계 기구의 발언권은 커져서 이제는 국무성과 맞먹는 위치에까지 올라왔다. 그 결과 외교 관계에 관한 통솔 기관이 희미해져서 가끔 혼란이 오는 때가 있다.
중동 휴전을 연장시키기 위해 국무성에서 조용한 외교를 벌이고 있는 동안 미 해외 홍보처 (USIA)에서 소련의 『이중 인격적 행위』를 규탄하는 논평이 발표됐다든가 서독의 대동구 적극 외교에 대해 로저즈 국무장관이 절대적 지지를 표명한데 반해 키신저 쪽에서는 유보의 입장을 취한 것 등은 바로 외교 정책에 관한 정부 각 처 사이의 횡적 연락이 결여된데서 온 결과였다. 서독 쪽에서는 이때 화가 나서 특사를 파견, 대관절 미국의 공식 태도는 어느 쪽인지 해명하라고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

<국무성 선 세부 처리만 맡아>
국무성은 주로 백악관 쪽에서 중대한 위기에 관심이 쏠려있을 때 나머지 분야의 일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대로 일의 분량은 많다. 국무성은 차관급이 지휘하는 다섯 지역 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국에는 국가별 데스크가 있어서 미국과 그 나라와의 모든 교신을 조정한다. 그래서 외원의 규모를 책정하는 것과 같은 문제에 관해서는 이 국가별 데스크의 역할이 상당히 큰 것이다.
그러나 한국 대만과 같이 미군 주둔 병력이 많은 국가의 경우 영향력은 국방성 쪽이 더 크다.
그러면 국무성이 약화된 상황을 살펴보자. 닉슨 대통령은 68년 선거 유세 중 자기가 당선되면 국무성을 「청소」해 버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는 재임 2년 동안 직원들을 교체하는 대신 국무성의 존재를 아예 무시해 버리고 1백10명으로 불어난 「키신저·팀」에만 의지하고 있다. 케네디 대통령 재임 중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차관들을 불러서 수시로 「브리핑」도 듣고 위기가 돌발할 때는 전화를 걸어 즉석 정세 판단을 요구해서 실무자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닉슨은 자기불신 한다고>
그러나 닉슨대통령은 일체 국무성의 노련한 외교전문가들의 지식을 이용하려 하지 않는다. 기자회견 준비도「키신저·팀」이 맡고 있다. 국무성에 대한 불신감은「케네디」「존슨」「닉슨」 세 대통령이 다같이 품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런 거대한 기구에서 결코 비밀이 지켜지지 못할 것이며 너무 관료적이 되어서 지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닉슨」대통령의 경우 이러한 이유에 더하여 국무성관리들은 주로『동부지방 진보적 지식인』이어서 자기를 불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슴에 도사리고있다.
한 국무성관리는 말한다. 『「닉슨」이 국무성 안에서 인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옳다. 하지만 그는 취임이래 호감을 사려고 조차하지 않았다.』 국무성을 약화시킨 또 하나의 이유는 현대 외교의 복잡성과 확대된 미국의 대외관여도 (인볼브먼트) 에 있다. 국무성 산하에는 현재 10만명의 직원이 있는데 이중 5분의1만이 국무성에 직속되어 있다. 해외 공관에는 무관을 제외해도 2만2천명이 나가있는데 이중 4천6백명 만이 국무성 직원이다.
어떤 대사관에서는 국무성 직원이 겨우 15%밖에 안 되는 곳도 있다.

<국무성 재활 문제 논의도>
국무성 안의 사정이 이 꼴이 된 이유는 최근 몇몇 국무장관들이 자신을 한 정부 기관의 장으로서 보다 대통령의 고문으로 보는 경향 때문이라고 케네디 존슨 양 대통령 밑에서 안보 보좌관을 지낸 「맥조지·번디」씨는 말하고 있다.
로저즈 장관의 장점은 닉슨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이고 단점은 외교 문제에 미숙한 점이라고들 말한다.
그는 법무장관으로서 국가 보안 회의에 참석한 것이 외교 문제 경험의 전부라는 것이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로저즈가 외교는 일반적인 원칙만 잘 세우면 세부 문제는 몰라도 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또 정부안에서 알력이 생기면 자기 자신이 나서서 국무성 이익을 옹호하지 않고 「알렉시스·존슨」차관을 내세운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한 쪽에서는 중동 평화 노력에서 보인 로저즈의 능력을 내세우면서 그가 이제 외교 문제 전반에 걸쳐 자신을 갖기 시작했다고 그를 옹호하고 있다.
여하튼 국무성의 역할이 약화되어 가는 현상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게 실무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점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그런 여건 하에서 국무성이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국무성의 재활 문제는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시리즈」차례
①국무성의 약화
②백악관의 친정
③국방성의 입김
④정보 기관의 난맥상
⑤외원과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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